재방송 페스티벌
주말이 연결되어 길게 느껴진 설 연휴가 끝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행하는 방식대로 설에 주어진 의식을 위하여 많이 이동하고 움직였을 것이다. 반면에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하여 연휴 내내 집에서 TV를 끼고 시간을 보낸 사람들도 있었겠고 자식들이 찾아오고 친지들이 모여 시간을 같이한 가정에서도 다과를 나누며 단체로 TV에 시선을 집중한 가정들도 적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난 먼 지방으로 출타할일 없었으니 길에서 고생 안 하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에 사는 형제들과 가족모임을 끝내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그러다 보니 잠깐씩 문밖출입을 하였다 하더라도 자연 TV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할 수 있겠다. '끼고 지냈다’기 보다는 집에 돌아오면 보든 안 보든 그저 자연스럽게 버릇처럼 리모컨을 찾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러니 특별히 챙겨보지 않은 프로그램 외에 그저 건성으로 본 것들은 무엇을 보았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요새는 그렇지 않지만 몇 년 전 까지만 하여도 설이나 추석이 되면 모든 공중파 채널에서 특집영화라고 홍콩무협영화를 계속 방영하였다. 그것도 지난해 했던 영화를 재방하거나 설에 했던 것을 추석에 또 틀어주곤 하면서 시청자들에게 특집이라는 이름으로 짜증을 선사하곤 하였다. 제작비를 줄인다는 핑계는 있었겠지만 무슨 이유로 때만 되면 꼭 중국무협영화를 방송의 의무인양 방영하였는지 그 때나 지금이나 참 아리송하기는 매 한가지이다. 그러나 현 방송 실태를 보면 그때는 애교스러웠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케이블방송이 도입된 1995년 3월 이전까지는 우리나라에 공중파 5개 체널 이외에는 시청자가 선택할 수 있는 채널은 없었다. 따라서 수십 개의 케이블 채널이 도입된다고 했을 때 시청자들에게 골라 볼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고 해서, 물론 시청자들이 지불해야 하는 시청료는 늘었지만, 당시 정권의 자랑거리중 하나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어 케이블 이외에도 다양한 매체의 TV채널이 생겨나 총 채널수로 따지면 좀 보태서 수백 개도 되지 않을까 할 정도로 많은 채널이 존재하게 되었고 지금은 IPTV라는 매체에 스마트폰으로 TV를 볼 수 있는 방법까지 합치면 진짜로 단순 채널 숫자가 수백 개하고도 남을 만큼 존재하게 되었다.
TV를 볼 때마다 가끔씩 이 좁은 땅덩어리에 그리 많은 방송매체와 채널이 존재한다는 것은 낭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방송 채널이 이렇게 많은데도 국민들의 프로그램 선택권을 내 세우면서, 결국은 속 들여다보이는 일이지만, 채널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계신 듯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방송매체나 채널 수 등을 따지면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 하여도 결코 뒤지지는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아직도 국민의 프로그램 선택권을 거론하면서 신규 채널을 주장한다면 참 가관스럽다고 아니할 수 없다. 요새 공중파 채널도 휴일에는 재방을 많이 하지만 어떤 매체 어떤 채널을 보던 간에 평일이나 휴일이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오는 프로그램들은 다 그게 그거이기 때문이다. 한 미디어 업체가 많은 채널을 소유한 까닭도 있겠지만 그들도 시청자들의 프로그램 선택권을 위하여 뭔가 스스로 제작하는 프로그램이 있기는 하는 건가 의심이 들 정도로 공중파 혹은 다른 채널에서 이미 방영한 프로그램들을 다투어 재방송하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보면 독립적인 채널이 아니라 그냥 재방송 채널들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올을 정도로 재방이 심할 뿐 아니라 같은 프로그램들이 여기저기서 동시간대에 방영되기도 한다. 그러니 예전 중국무협영화를 재방, 삼방 하던 공중파 채널들을 되짚어 흠잡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겠다.
시청자들은 각 매체마다 별도의 시청료를 지불한다. 공중파 따로 케이블 따로 위성방송 따로 IPTV 따로...... 그러나 공중파를 제외하면 시청자들에게는 채널의 선택권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모든 매체의 상품들이 특정 채널들을 묶어 패키지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의 매체와 하나의 패키지를 선택하면 그에 요구되는 정해진 시청료를 지불해야만 할 뿐, 그 모든 채널에서 내가 원하는 채널들만을 선택하고 그에 합당한 요금을 내는 시스템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청자들은 좋으나 싫으나 하루 종일 남의 프로그램을 가져다가 재방송만 하는 채널에도 할 수 없이 시청료를 주어야 한다. 이게 프로그램 선택권이라면 이에 대한 사전적 의미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상업방송에서 수익성이 있어야 하니 재방송은 필수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제작한 프로그램이나 외국에서 자신들이 구매한 프로그램들을 독자적으로 몇 번 재방송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 많은 채널들이 거의 모두 공중파에서 방영한 프로그램을 필두로 다른 채널에서 수 없이 방영한 프로그램들을 가져다 1년 내내, 좀 지나서 잊을 만하면 다시, 무슨 특집이라고 다시, 여름 옷 입고 제작한 프로그램을 겨울에 다시, 이 핑계 저 핑계로 계속 재방송하고 있다.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싶어 공중파만 보겠다고 아파트 내선에 연결하였더니 케이블이 들어오면서 아파트내선 안테나를 모두 끊어놔 작동이 안 된다고 한다. 평소 뉴스와 스포츠, 다큐멘터리나 역사 드라마 외에는 TV를 잘 보지 않으니 나만 생각하면 디지털 실내 안테나 하나 사 볼까 하겠지만 집 식구들은 또 나와 생각이 다르니 그리하지 못하고, 그저 이런 너절한 채널에 묶여 수신료를 더 내야하나 하는 생각 위에 KBS가 매 프로그램마다 연일 내 보내는 수신료현실화자막이 내 생각도 너절하게 만드는 기분이다.
부디 올해에는 정해진 패키지보다는 시청자들이 스스로 원하는 채널만을 골라 시청자 패키지로 만드는 선택권이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흘러간 인생도 재방송이 가능하면 재방송 전에 내 인생 편집을 잘 하고 싶은데. 부질없는 생각에 또 하루가 간다.
2014년 2월 3일
하늘빛
움악출처 : 이동활의 음악정원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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