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아기는 어디로 나와요?

korman 2014. 8. 8. 18:25

 

 

    사진 : 2014년 8월 가을을 재촉하는 안면도 갯가의 밤송이



 아기는 어디로 나와요?

 

비가 온다고 이 더운 날 장화를 신고 비옷에 우산까지 받쳐 들고는 할머니 손에 이끌려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온 녀석이 문간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할아버지를 부르더니 급하게 묻는 말이,

“할아버지! 애기는 어디로 나와요?”

순간 그 질문을 바로 인지하지 못한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온 집사람에게 물었다.

“무슨 얘기야?”

“몰라. 애들 집에서 여기 오는 내내 계속 애기는 어디로 나오냐고 묻고 있네. 그래서 어찌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몰라 집에 가서 할아버지한테 물어보라고 했더니 그러는 거야”

내가 머뭇거리자 이 녀석은 내 손을 당기며 대답을 종용하였다. 순간 이런 건 할머니가 좀 알아서 대답해 주지하는 야속한 마음과 함께 손녀아이가 궁급해 하니 대답은 해 주어야겠는데 이 할아비는 어찌 대답을 해야 할지 참 난감한 순간을 맞은 것이다.

 

예전에도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이런 질문을 많이 하였다. 그 때 어른들의 이에 대한 태도는 여러 가지였다. 별스런 질문을 한다고 야단치는 사람, 그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사람, 나중에 좀 더 크면 알려준다고 설득하는 사람 등등. 그런데 제일 많이 한 대답이 ‘다리 아래서 주워왔다’는 말로 얼버무리며 그 이상을 물으면 아이에게 화를 내 더는 못 물어보게 하는 것이었던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딴에는 비슷한 대답이었지만 참 궁색한 대답이기도 하였다. 그랬었다고 지금 세대의 손녀에게 같은 대답을 할 수는 없는 일인지라 아이에게 차분히 말부터 시켰다. 이제 다섯 살이 된 이 녀석은 주위의 고모, 이모들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진작 어느 날 눈에 보이는 아기를 데리고 오자 그 아기가 뱃속에서 어찌 밖으로 나왔는지 자못 궁금하였던 모양이었다.

 

“애기는 어디 있었는지 아니?”

“엄마 뱃속에요.”

“그럼 너도 애기였을 때 엄마 뱃속에 있었지? 그거 기억 나?”

“네 기억나요.”

“엥? 그게 기억 나? 그러면 너는 어떻게 엄마 밖으로 나왔어?”

“내가 밖에 나가고 싶다고 엄마 배를 막 발로 찼어요.”

“그래. 다른 애기들도 다 그렇게 발로 차고 밖으로 나왔어.”

“그런데 어~ 어~ 어~ 뱃속에서 어디로 나왔냐고요! 그건 기억 안 나요”

 

아무리 조기교육이 유행하는 시절이라 하더라도 이제 다섯 살 아이에게 할아비가 알고 있는 그 신비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 한참을 고민하다가 차라리 솔직해지자는 생각에,

 

“엄마 뱃속에서 아기가 발로 배를 막 차면 엄마가 ‘아프니까 밖으로 나와!’ 하고 소리 지르면 아기가 깜짝 놀라서 나오는 거야.”

“그러니까 어디로 나오냐고요?”

“어디로 나오는지 할아버지는 알고 있는데 지금 너에게 가르쳐 줘도 네가 지금 너무 어려서 잘 몰라. 그러니까 네가 학교 들어가면 그 때 알려줄게. 그 때 다시 물어봐라.”

“그럼 학교 가려면 몇 밤 자야 돼요?

“백 밤 자면 돼.”

“백 밤 자고 꼭 가르쳐 줘야 돼요?”

 

이런 대화로 잠시 난처한 순간은 모면되었다. 저녁에 아들내외에게 물었더니 이 녀석이 요새 부쩍 아기는 어디로 나오는지 알려달라고 졸라 순간을 모면하느라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라고 대답하곤 하였다고 하였다.

 

“아무리 대답이 궁색해도 할아비에게 미룰게 따로 있지 그런 걸 미루면 어쩌냐?”

“그래서 뭐라 대답하셨어요?”

“학교가면 가르쳐 준다고 했다.”

“그 때는 뭐라 하실건데요?”

“담임선생에게 미루어야지”

 

그 이후 며칠간 다시 묻지는 않고 있다. 물으면 같은 대답을 하면 되겠지만 지금 가르쳐 줄 뭐 현명한 대답이 없을까? 다섯 살 손녀의 궁금증이 할아비 더위를 잊게 한다.

 

2014년 8월 7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