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월드컵이야기
이른 아침, 네덜란드와 코스타리카의 8강전 경기를 보았다. 연장전까지 득점 없는 경기가 이어졌음에도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물론 전력 면에서는 네덜란드가 위라는 것이 경기에서 나타났지만 격렬한 공세에도 불구하고 코스타리카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결국 PK차기에서 애석하게 패하기는 하였지만 오늘 코스타리카가 보여준 축구는 우리 선수들과 감독에게 많은 교훈을 줄 수 있는 경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2002년도에, 설사 홈 어드밴티지를 입었다 하더라도, 4강까지 갔었던 우리나라 축구다. 공동주최국이었던 일본과 세계 강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탈락한 강대국들은 심판이 도왔다고 핑계를 대지만 이번 월드컵에서도 심판의 도움을 받은 경기는 많이 있다. 그러니 4강은 우리 선수들과 코치진이 만든 분명한 결과물이었다. 그랬던 우리나라 축구가 언제부터인가 최대의 목표가 16강이 되어버렸다. 사실 지역 예선을 통과하여 매번 본선에 오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축구는 매번 본선행을 실현해 오고 있다. 그러나 돌아보면 2002년 이후 최근 몇 번의 본선 진출은 우리가 잘해서 그리 되었다기 보다는 다른 나라들이 못해서 어부지리를 본 경우였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닌 듯싶다. 지난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우리는 목표를 달성하였다. 그렇다고 우리가 스스로 잘해서 이룬 결과라고 누가 감히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내심 매번 16강을 목표로 하는 것이 못마땅하였다. 목표가 낮으면 선수나 운영진의 자세도 그것에 안주하게 된다. 꿈은 크게 가지라고 하였는데 그래도 8강에는 목표를 둬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예선전, 친선경기 등을 치르며 나타나는 결과를 보고 16강이나 제대로 갈까 하는 의구심에 더하여 그래도 거기까지는 가겠지 하는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가나와의 평가전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너무 큰 점수를 준게 허무하기는 하였지만 한편 본선에 가기도 전에 다치면 안 되니까 몸을 사리다 그리 되었겠지 하는 생각도 하였다. 마지막 평가전 결과의 의미가 본선을 좌우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본선 뚜껑이 열렸다. 첫 경기에서 옥신각신하다 이근호가 한골을 넣었다. 잘 관리하면 이길 듯 보였다. 그런데 골을 넣고 더 매섭게 공격을 하여야 할 것 같았는데 좀 느슨해진다 싶더니 연거푸 두 번이나 중앙에서 쓸데없이 골키퍼에게 공을 돌렸다. 물론 상대 선수들을 중앙으로 나오게 하는 작전으로 그랬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러나 상황이 그리 이해되지 않으며 좀 불안한 마음이 일어났다. 불행하게도 그 두 번의 백패스를 보며 일었던 불안함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상대의 골로 이어졌다. 우리 선수들이 잘 할 때도 난 늘 싫어하는 장면이 있다. 쓸데없이 골키퍼에게 백패스 하는 것과 위험지역에서 공을 잡으면 잡은 선수가 곧바로 앞으로 내 지르는 대신 자꾸만 발재간을 부리거나 잔패스를 하는 것이다. 그러다 잃은 골이 한두 개가 아니거늘.
알제리전은 꼭 가나와의 평가전을 연상시켰다. 축구에서는 선제골을 넣은 팀이 이기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다면 앞선 경기에서 골을 넣어 한창 자신감에 차 있을 이근호가 선발로 나올 줄 알았는데 그리되지 않았다. 마지막 벨기에와의 경기를 보면서 이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알제리전에서 저렇게 좀 했었더라면 좀 다른 결과가 만들어졌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경기 내내 이어졌다. 그리고 참담한 결과를 가지고 선수들은 돌아왔다. 공항에 엿이 뿌려졌다. 경기 중 관중이 던진 인종차별적 바나나를 한 입 베어 물었던 외국 선수처럼 뿌려진 엿을 하나 입속에 넣는 용기를 가진 선수는 없었지만 그러나 그들도 나름대로 최선은 다 했을 것이다.
6월의 FIFA 순위에서 일본이 우리보다 11계단이나 위에 있다. 과거에는 통상 우리가 위에 있었고 1계단이라도 떨어지면 난리가 났었는데 이제는 그게 당연시 되었다. 늘 이겨야만 하였던 일본과의 경기와 FIFA 순위에 언제부터 우리가 이리 무디어 있었나 생각해 본다. 이아침 코스타리카의 경기를 보면서 선수들의 실력이나 감독의 작전보다는 늘 정신무장이 앞서갔던 과거와는 달리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 팀의 정신적 무장은 어디에 두었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언젠가는 있을 일본과의 경기에서만이라도 과거의 정신력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또 다른 4년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 아니겠나.
남은 월드컵 경기는 이제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 그러나 아시안 게임은 추락한 대표팀 선수들과 코지진의 명예를 회복시키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감독도 유임 되었으니 잘 연구하여 국민들에게 9월의 환희를 선사하기 바란다. 이영표의 말을 빌어 아시안 게임 역시 ‘경험이 아니라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2014년 7월 6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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