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천상은 불타(佛陀)가 설법시나 행사시 호지부회(護持赴會)한다고 하며, 천인상(天人像)이라고도 한다. 비천상은 그 특성상 기락천(伎樂天)과 함께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비천상이 한반도에 들어 온 것은 인도불교를 따라 서역, 신강,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내륙에 이르렀고, 4세기경 불교가 들어오면서 벽화고분에 비천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인도나 중국의 석굴사원에는 대부분 비천상이 함께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불교의 흔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천상은 성격상 불교와 관계가 깊어, 불교와 관련된 고구려벽화와 통일신라의 범종에서 그 존재가 확인되고 있다. 백제나 신라는 고분벽화가 크게 성행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고분의 구조상 벽화내용이 다양하게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고구려벽화고분에는 천장부에 비천상이 나타나 있는데 이는 고분의 천장을 천상계(天上界)로 부르고, 비천상은 즉 소리를 연주하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천인(天人)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비천상의 회화적인 표현은 신라·고려시대에 오면서 사찰의 범종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한다. 신라 및 고려범종의 종신(鐘身)에 표현된 문양은 연화문, 당초문, 운문, 보살상, 비천상이 주류를 차지하는데 비천상은 그 중 하나로서 고대에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신라종의 비천상은 쌍(雙)의 천인이 대면좌(對面座) 또는 정면좌(正面座)하면서 종의 양면에 배치되거나, 1구(軀)의 천인이 양면에 배치된다. 고려 범종에 나타나는 비천상의 천인은 각 1구씩 양면으로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인 양상이다. 비천상은 주악상(奏樂像)으로 표현하는 것과 공양상(供養像)으로 나타내는 것이 있는데, 주악상이 주류를 이룬다. 신라 비천상은 범종의 몸통부에 배치되지만, 고려시대의 범종 중에는 용통과 종신부(鐘身部), 상대(上帶)나 유곽대문(乳廓帶紋)에 까지 나타나 있는 사례가 있어 일정하지 않다. 이 시기에는 비천상 대신 보살(菩薩)이나 여래상(如來像)을 배치하는 추세로 자리잡아 간다.
우리나라 최고의 범종으로 알려져 있는 상원사 동종(725년)은 쌍주악(雙奏樂)의 비천상이 배치되었는데, 그 형상은 가볍게 구름을 타고 천의(天衣)는 머리위로 둥그렇게 돌면서 자락은 하늘을 향하여 치솟았다.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 771년)은 혜공왕이 부왕인 경덕왕의 뒤를 이어 완성한 것으로 4구의 비천이 1쌍씩 대면상태로 배치된 것이다. 이 비천은 봉오리 모양의 겹 당초문을 배경으로 연화좌(蓮花座) 위에 공양상(供養像) 형상으로 처리되고 있다. 일본 최고의 한국 범종인 도근현(島根縣) 안래시(安來市)의 운수사(雲樹寺) 범종은 천의를 감싸고 있는 배면(背面)을 보주형(寶珠形)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이 범종은 8세기 전기경으로 추정된다. 실상사에서 출토된 범종에는 당초문의 구름문 위의 연화좌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이 문양은 비천의 섬세하고 유려한 상호(相好)와 보관(寶冠)으로 보아 9세기경으로 보는데 이는 실상사 창건년대와 일치되고 있다.
고려시대 천흥사 동종(1010년)은 대종(大鐘)에 속한다. 이 범종의 비천상은 구름 위에서 합장하는 자세로 하늘을 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 경기도 용주사 범종은 고려종으로서 가장 먼저 3존상(尊像)으로 표현하고 있다. 천의를 날리며 몸통을 수평으로 하여 하늘을 나는 형상이다. 천인이 몸통을 수평을 유지하면서 하늘을 나는 형상은 신라 말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日本 山口縣 下關市 住吉神寺 梵鐘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조선 범종에서는 비천상의 존재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상대(上帶) 아래에 범자(梵字)가 돌려지거나 유곽부(乳廓部)가 종신의 복부쪽에까지 내려오기도 한다. 또 용두(龍頭)는 단두용(單頭龍)이 쌍두용(雙頭龍)으로 변화한다. 봉선사(奉先寺) 범종은 비천상이 아닌 보살상(菩薩像), 명문(銘文), 돌기선이 돌려지고 있다. 갑사(甲寺) 범종에는 지장보살이 배치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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