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야기 2 - 병보다 더 서러운....
10일 주기로 4박5일씩 정기적으로 입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당사자는 오죽할까마는 보호자랍시고 그 주기에 맞춰 병원엘 같이 드나들어야 하는 나로서도 5개월째 접어들고 나니 꾀가 생긴다. 병원 입원계에 미리 예약하면 내 집사람과 같은 처지에 있는 환자들에게는 재입원시에 되도록 같은 병동의 입원실을 우선 배정하는지라 입원 차수가 늘어날수록 다시 만나 인사하고 지내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개중에 활동성이 좋은 분들은 의료진의 호구조사를 비롯하여 입원실마다 찾아다니며 정보 전달에도 여념이 없다. 환자들 입장에서는 무슨 정보든 귀가 솔깃하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가끔 안 보이는 분들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는 혼자만 알고 있으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얼굴을 익히고 며칠씩 같은 입원실에서 먹고 자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옆 침대의 환자나 보호자에게 집안사정이나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토로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집사람이 입원하는 병동의 환자들은 젊은 사람들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중년을 훨씬 넘겼거나 노년에 이른 사람들이다. 아마도 지난 세월의 무게에 더하여 동병상련 때문인지 서로 쉽게 말을 주고받는 것 같다. 때문에 그간 집사람의 입원실을 따라 다니며 겪은 이야기나 집사람을 통하여 전달받은 이야기들을 처음부터 적어 놓았다면 지금쯤 한 권의 책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사람들은 나나 집사람은 쉽게 하지 못하는 자신의 이야기들을 풀어 놓곤 한다. 그러나 애처롭게도 그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가족들과의 불편한 관계나 불행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한 쪽 이야기만 들으니 어떤 경우에는 소설이 아닌가 생각될 때도 있지만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저절로 분이 생기고 눈물이 흐를 때도 있다.
며칠간 오가는 보호자도 없고 면회 오는 사람도 없던 50중반을 넘어선 여인은 맏며느리로 시집가 시가를 일으키며 일생을 다 보냈는데 병에 걸리자 시가로부터 버림받았다고 했다. 그녀는 남편이나 자식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은 채 단지 앞으로 시가 쪽 방향으로는 바라보지도 않겠다고 하였다. 가족은 찾아오지 않고 간병인을 쓰고 있던 한 할머니는 당신의 재산이 꽤나 있었는데 병에 걸리자 아들이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자신을 은행을 비롯하여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강제로 도장을 찍게 하더니 코빼기도 안 보이고 딸들은 전 재산을 아들에게만 넘겨주었다고 엄마를 안 보겠다고 하였다 한다. 가족이 없어 친동생에 의탁하려 동생이 사는 곁으로 이사를 하였던 60초반 초로의 여인은 작은 종양이 발견되었으나 동생이 각종 보험에 가입하고는 오랫동안 치료를 못하게 하여 암에 이르렀다며 동생이 관련 보험금을 모두 수령하였지만 자신은 아무 것도 모른다 하였다. 면회 온 동생이 언니에게 하는 태도로 보아 그럴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어머니를 찾아와 입원실의 다른 사람들은 의식하지도 않은 채 요양원에 가라니까 병원에 와서 일을 악화시키고 크게 만든다고 큰소리를 내는 아들도 있었다. 모두들 그런 사연들이 있었을까 생각하면서도 듣는 마음은 몹씨 안 좋았다.
이번 입원에서 지난번 같은 입원실을 사용하였던 사람을 같은 입원실에서 다시 만났다. 인사를 나누며 집사람이 언제 오셨냐고 묻자 지난번에 퇴원 못 하고 15일째 그대로 있는 거라고 하였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상태가 더 악화되어 그리된 것이었다. 집사람이 그녀와 며칠을 또 보내고 다시 퇴원하는 날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은 호스피스병동으로 그녀가 옮겨가는 것에 동의하고 있었다. 모두 체념한 듯 그녀는 아들에게 그녀 이름으로 된 재산을 어찌 정리하라고 유언 같은 말을 남기고 있는 동안 휴게실에서 만난 그녀의 남편은 긴 한숨을 쉬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대학까지 나오고 사회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한다. 처음 병을 발견하고 조치를 얼른 취하였으면 최악의 경우는 면하였을 것을 그녀는 그녀가 믿는 종교가 자신을 고쳐줄 것이라며 1년여를 남편과 싸우며 병원가기를 거부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최근 견디기 어려웠는지 그녀 스스로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하여 입원은 하였지만 때가 늦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작 남편이 원망하는 것은 그녀의 종교보다는 그녀의 친구들이었다. 모두가 그녀만큼 교육을 받은 친구들이라는데 모여 앉으면 그녀에게 종교가 꼭 그녀를 고쳐줄 거라고 기도만 할 뿐 그녀를 병원에 가야한다고 이끄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저녁 무렵 남편의 넋두리가 내 가슴 한켠에 진한 회색빛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 전날 밤에는 그녀가 다니던 종교시설에서 사람이 입원실로 찾아와 그녀에게서 십일뭐라고 하는 돈을 받아가더라는 집사람의 전언이다. 그건 시간을 정리해야 하는 사람의 병실에서도 받아가야 하는 것인지 가뜩이나 산란해져 있던 마음이 갑자기 혼란해짐을 느꼈다.
집사람은 이틀 후 다시 입원실로 가야 한다. 그리고 또 누군가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것이고 하루 두세 차례 입원실에 들르는 나도 들을 것이다. 하지만 호스피스병동으로 옮겨간 그녀의 다른 소식은 안 들었으면 좋겠고 병도 서러운데 가족 간의 불행한 이야기가 중병에 있는 그녀들을 더욱 서럽게 만드는 일도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6년 4월 8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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