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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 김치의 환경부담금

korman 2016. 4. 15. 15:38

 

 

 

 

칼국수 김치의 환경부담금

 

지난겨울 내가 사는 동네에 조그마한 칼국수집이 하나 생겼다. 개업을 준비하며 예고한 가격이 3,000원이었다. 요즈음 먹방이라는 TV프로그램을 보면 가끔씩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먹거리를 소개하곤 한다. 화면에 나오는 모습이야 카메라앵글이나 연출에 따라, 혹은 리포터의 연기력에 따라 음식의 모습이 달리 보이지만 출연자들의 좀 과장된 모습을 감안하더라도 우선 그런 맛있는 음식에 가격까지 저렴하다면 서민들의 마음이 끌리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개업하는 날이라 하여 점심에 들러 보았다. 음식점 입구에서 보여주는 대로 국수는 손으로 만들어 넣은 것인지 밀가루에서 우러나오는 구수한 맛과 함께 멸치를 주재료로 만든 따끈한 국물이 값에 비하여 나무랄 데 없는 맛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칼국수는 그 재료와 형태가 다양하지만 난 육류로 국물을 낸 것 보다는 해물류로 만들고 밀가루의 맛이 국물과 섞인 손칼국수를 좋아한다. 따라서 이처럼 저렴한 가격에 내 기호에 맞는 칼국수집이 집 근처에 생겼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한편 칼국수 맛을 더해주는 것이 김치의 맛인데 이곳의 배추김치는 겉절이 형태로 숙성이 되지 않은 것이고 깍두기는 시지 않게 숙성시켜 풍성한 김칫국물과 함께 제공되는지라 그 또한 맛을 돋아주는 역할을 한다. 내 집사람도 나와 칼국수 기호는 같은 고로 이 집을 좋아하게 되었다. 반복되는 입·퇴원 치료의 후유증 때문에 입에 닿는 것이 별로 없는 집사람이지만 이 집의 칼국수만은 그 따끈한 국물이 좋아 가끔 먹겠다고 하니 나에게는 이 또한 다행이라 하겠다. 단지 불편한 것은 김치와 물은 스스로 챙겨야 하고 되도록 현찰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랴. 큰돈을 내고 일류호텔 뷔페에 가더라도 모든 음식을 스스로 서빙해야 하지만 여기서는 김치와 물만 챙기면 되는 것을. 그리고 3,000원짜리 먹고 카드 계산은 좀 낯간지럽지 않나? 느닷없이 칼국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느 날 이 집에 붙어놓은 안내문 때문이다.

 

처음에는 없었던 별스런 안내문 하나가 근래에 가격표옆 벽에 큼지막하게 붙어있었다.

 

“김치는 마음대로 가져다 드시되 남기시면 환경부담금 1,000원을 받습니다.”

 

사실 결혼식 뷔페를 가면 이런 비슷한 문구를 종종 볼 수 있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음식을 마구잡이로 가져다 놓고 남기면 그런 글귀를 붙여놓을까 생각하곤 하였는데 뷔페에서의 습성이 동네 칼국수집 김치에도 나타나는 모양이었다. 계산을 하면서 왜 갑자기 안내문을 붙여 놓았냐고 직원에게 물었다. 그 대답은

 

“김치를 가져다 드시는 횟수를 제한하는 것도 아닌데 일부 손님들이 너무나 많이 한꺼번에 가져다 놓고는 절반 이상을 남기고 갑니다. 남겨진 김치를 재활용할 수도 없고 저렴한 칼국수 값에 김치를 그렇게 다 버리면 우리는 어찌합니까? 그래서 고심 끝에 대다수의 손님들에게는 실례인줄 알면서 할 수 없이 붙여 놓았습니다.”

 

우리 부부는 그곳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들른다. 먹는 양이 작은 집사람이 칼국수를 좀 남기기는 해도 김치를 남기는 일은 없었지만 그 말을 듣고는 내 배가 불러도 집사람이 남기는 양 만큼 내 그릇에 덜어놓곤 한다.

 

어느 날 내가 본 인터넷 지식 설명에 의하면 조선시대 양반가에서는 노비에게 별도로 상을 차려 밥을 먹게 한 것이 아니라 양반네 식구들이 남긴 음식을 노비들이 먹곤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양반들은 음식을 남겼고 누군가가 그릇을 다 비웠다면 그 날 노비는 굶었다고 하였다. 사실이 그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노비는 고사하고 가축들에게도 전용사료를 먹이는 지금 세상에서 음식을 남기면 그 처리도 곤란한 마당에 버려지는 것이 너무 많아 안타깝기도 하다. 내 집에서도 가끔 그리 버리는 음식이 나올 때는 이러다 벌 받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 세상에 굶고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버려야 하나 하는 생각에서다. 갑자기 할머니 생각이 났다. 어렸을 적 초등학교도 가기 전 밥상에서 먹을 것을 조금이라도 남기지 않으면 늘 야단을 치셨다. 나에게도 밥 한 톨이 아쉬운 때에 왜 늘 무언가를 조금씩 남기라고 하시는지 서운하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할머니께서는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셨다. 어느 날 나는 반항하듯이 할머니께 그 이유를 여쭈었다. 할머니의 말씀은

 

“집에서 기르는 돼지와 개에게도 먹을 게 필요하단다.”

 

집사람 병원에 있는 동안 오늘도 냉장고속 음식의 유효기간을 살펴보며 할머니 생각을 한다.

 

2016년 4월 14일

하늘빛

음악: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