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사랑보다 달콤한......

korman 2016. 5. 19. 13:20

 

 

                  이미지:구글

 

 

사랑보다 달콤한...

 

내 집에서 동쪽으로 난 큰길가로 가기 위해서는 꼭 그 커피 전문점을 지나야 한다. 골목 하나를 건너면 있는 그곳은 단독주택 차고 같은 곳을 개조해 만든 곳으로 커피 전문점이라기보다는 그저 주택 주인집 아들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 바리스타를 하는 취미의 공간처럼 보인다. 장소는 협소하고 안에는 책이 많이 꽂혀있으며 오전에는 잠겨있고 문을 연 늦은 오후에도 손님은 거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동서남북 큰길에만 나서면 깔끔하고 현대적인 커피숍들이 예전 다방보다도 많이 들어서 있는데 이면도로에 접하고 있기는 해도 간선도로에서 몇 블록이나 떨어진 뒷동네 허름한 만화방 같은 곳에 누가 찾아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자칭 커피를 입에 달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도 이곳으로 이사 온지가 2년이 다 되도록 그저 지나치며 바라만 봤을 뿐 아직 그곳에 들러 한 잔 맛본 적이 없다. 혼자 가기도 그렇고 딱히 그곳으로 불러 만나야 할 누구도 없기 때문이다.

 

그곳 인도 한 귀퉁이에는 주인장이 흘려 썼는지 곡선이 난무한 글씨체로 “커피는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처럼 순수하고, 사랑처럼 달콤하다.”라는, 커피 마니아들에게는 명언이라면 명언이고 커피 예찬이라면 예찬인 격언 같은 것이 적혀있는 사다리꼴 모양의 양면 흑판이 놓여있다. 이 말을 예전에 듣기는 하였으나 기억이 가물가물 하였는데 누가 하였나 찾아보았더니 프랑스의 정치인이며 외교가였던 ‘탈레랑 페리고르’라는 사람의 커피 래시피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많은 블로그나 카페에서 그 말을 인용하고는 있었지만 ‘사랑처럼 달콤하다’라는 구절에서는 ‘사탕처럼 달콤하다’, ‘키스처럼 달콤하다’라고 적어놓은 곳이 많았다. 아마 한 사람이 글을 올리면 다른 사람들이 복사를 하여 인용하며 그리 된 듯하다. 내가 지나다니는 그 집의 흑판에도 실은 ‘사탕처럼 달콤하다’라고 쓰여 있다. 사탕이 사랑보다 혀에서 느끼는 달콤함이야 더하겠지만.

 

그래도 커피깨나 마신다는 사람이 사랑인지, 사탕인지, 키스인지를 몰라서야 되겠나 싶어 원문을 찾아 나섰다. 프랑스 사람이 한 말이니 불어가 원문이겠고 제대로 알려면 프랑스 포털사이트에 들어가야 하겠지만 불행이도 불어를 모르니 영어라도 찾아볼 요량으로 미국 야후엘 들렸다. 몇 번 손가락 운동을 하자 이런 게 나왔다.

Black as the devil, hot as hell, pure as an angel, sweet as love."

-Charles Maurice de Talleyrand-Périgord (1754-1838)-

그러니 커피는 사탕이나 키스가 아니라 사랑처럼 달콤하다는 말이 되겠다. 그 분이 사셨던 시절에는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커피에 설탕을 듬뿍 넣어서 드셨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그 분 말씀이 내가 마시는 커피와는 어찌 다른가 살펴보았더니, 우선 처음부터 아메리카노 스타일로 뽑은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 악마의 빛깔이 어느 정도 검은지는 모르겠으나 검다기보다는 진한 밤색에 가깝고, 지금 지옥이 찜질방에서 달련된 한국사람들 때문에 더 뜨겁게 리모델링한다고 하는데 커피 드리퍼를 통하여 뽑은 커피다 보니 사실 찜질방보다도 덜 뜨거운데 지옥처럼 뜨거울 리 만무하고 어린아이들을 노역시켜 커피 원두를 생산한다고 하니 천사처럼 순수하지도 않으며 집사람과의 연애시절에 사랑이 얼마나 달콤하였지 가물가물하니 설탕을 넣지 않고 마시는 커피에 어찌 달콤하다는 생각이 들까만 커피에 대한 생각을 그리 멋진 말로 표현하였다는 것 자체가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에 일 때문에 알게 된 이태리 변호사 한분이 로마에서 커피가 가장 맛있는 곳을 소개하겠다고 하여 골목골목을 돌고 돌아 모두가 골목 한 귀퉁이에서 서서 마시는 오래되어 보이는 커피숍에서 그야말로 악마처럼 검은 커피를 70%쯤 채우고 거기에 우유를 붙고는 설탕을 세 숟가락 넣어 찰랑찰랑하게 만든 에스프레소 한 잔을 받아들고 세 번에 나누어 마셨던 기억이 난다. 그 때에도 나의 커피는 늘 아메리카노였지만 여전히 그것을 고집하는 지금도 그곳의 기억이 새로울 만큼 그 커피는 맛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좀 익숙한 맛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나중에 여기저기서 접대용 커피를 주는 대로 마시다 보니 그건 종이컵을 3/5쯤 채운,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믹스커피의 맛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밀라노에서 내 큰아이와거래하는 체코여인은 한국에 출장을 올 때마다 커피믹스를 여러 박스 사가지고 간다. 자신은 물론 그것을 맛본 이웃과 어머니의 부탁으로.... 탈레랑 페리고르가 이태리 사람들이 커피믹스를 즐기는 모습을 본다면 그의 커피 래시피는 어찌 변할까 궁금하다. 프랑스 스타일 커피는 또 다르니 굳건히 자신의 말을 지키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나저나 그 우리 옆집 커피숍 흑판에 잘못 쓰인 ‘사탕처럼 달콤하다’는 ‘사랑’으로 고치시라고 알려 주어야 하나?

 

2016년 5월 18일

하늘빛

음악:유튜브

 

 

'이야기 흐름속으로 > 내가 쓰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버려야 할 것에 대한 미련  (0) 2016.06.11
우리도 그들처럼  (0) 2016.06.01
짬뽕집 주차장  (0) 2016.05.14
암니호텔에서 옴니호텔을 외치다.  (0) 2016.05.05
전기스탠드 때문에  (0) 2016.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