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버려야 할 것에 대한 미련

korman 2016. 6. 11. 15:25



버려야 할 것에 대한 미련


한세상을 살아가는 기간이야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하겠지만 그 짧고 긴 세월동안 사람들은 숱하게 많은 것들을 버리며 산다. 어떤 이는 새것을 위하여 헌것을 버리고 또 어떤 이는 오래 간직하였으나 더 이상 본인에게 쓰임새가 없거나 고장이 나 버리기도 한다. 그런 반면에 버려야 될 것인데도 선뜻 버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소용이 다하여 버리면서도 오래 간직한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사람도 있다. 쓸만한 중고물품을 거래하는 인터넷시장이나 벼룩시장 혹은 주말시장이다 하는 것이 형성되어 소용 닿는 사람들과의 직거래중고장터가 마련되기는 하였지만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이 쓰던 물건을 내가 쓴다는데 대하여 그리 관대하지는 못한 것 같다.


2년 전 새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참 많은 걸 버렸다. 구석구석에 쌓여있는 물건들을 들어내면서 어째서 그런 걸 쌓아놓고 있었는지 내가 생각하여도 나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25년 동안을 한 곳에 살면서 많은 것을 버렸을 텐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간 뭘 버려야 되겠다 생각해서 끄집어내었다가도 이 물건은 이런 경우가 생기면 소용이 있겠다 싶어 다시 집어넣었던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니 그럴 만도 하다. 그리고 예상했던 경우는 결코 생기지 않았다. 반면 어떤 물건들은 새집으로 옮기고 싶어도 집의 크기가 다르고 베란다나 방의 수치나 구조가 달라 창문이나 전기, TV 및 전화 연결구 위치가 맞지 않는 관계로, 비록 오래 아끼던 물건이라도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했던 것도 있었다.


그렇게 쌓아 놓았던 것들을 버리고 왔으면서도 아직 버리는 데 익숙하지 못한 탓인지 이사 온 집 베란다 한쪽에는 또 무언가가 쌓여가고 있다. 이사 올 때 필요할 것 같아서 (실상은 필요 없는 것이겠지만) 가져온 것들과 2년 동안 살면서 새로 쌓여진 것들이다. 버려야겠다고 마음먹고서는 또 선뜻 버리지 못하여 쌓였기 때문이다. 물론 단독주택이나 시골에 산다면 다 필요한 것들이고 모아 놓을 공간도 충분하겠지만 도시의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잡다한 것들에 대한 공간이 부족하다. 또 그런 것들을 모아 놓는다 한들 사실 별로 쓸데도 없다. 먼저 25년간을 살던 집에서도 그랬고 지금 2년을 산 이 집에서도 그렇다. 그런데도 자꾸 쌓아 놓으며 살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집사람이 불편한 몸으로 남편 바지를 다린다고 하다 태웠다. 늘 쓰던 대로 온도를 조정하였는데 갑자기 고온이 되어 가랑이 한 쪽이 타 버렸다고 하였다. 그 다리미는 1981년도에 구입하였던 것으로 그간 다리미와 연결된 전선의 피복이 벗겨져 몇 차례 테이프로 감기도 하고 또 접점이 끊어져 납으로 때우기도 해 가면서 사용하던 것이었는데 이제는 온도 조절기가 망가져 버려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새 다리미가 있었지만 집사람은 남편의 권고를 무시하고 그 오래된 것이 편하다며 쓸 수 있을 때까지 쓰고 버리겠다고 늘 수리를 부탁하더니 바지 한 쪽을 태워먹고는 이제 남편의 능력으로는 고치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고는 베란다 캐비닛에 깊숙이 넣어 두었던 새것을 꺼냈다. 그러나 그 고장 난 다리미는 아직 쓰레기통에 넣어지지 않고 건넌방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아마도 35년 세월에 대한 집착과 버려야 할 섭섭함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골동품이 없는 내 집에서 그래도 그 다리미가 집사람에게는 나 다음으로 오래된 동반자였던 것은 분명하니까.


다리미 다음자리가 아직 살아있기는 하다. 32년째 쓰고 있는 전자레인지가 그것이다. 현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에서 만든 것으로 아직 쌩쌩하게 잘 돌아간다. 10수년전에 버린 짤순이가 달린 세탁기가 그러했듯이 이 전자레인지도 고장이 나면 서비스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버려져야 할 것 같다. 아마도 부품이 없을 테니까. 짤순이 세탁기가 고장 났을 때 서비스맨을 불렀더니 세탁기를 보자마자 “박물관에 가야 할 세탁기가 아직도 있었네. 클러치가 고장 났는데 부품이 없어 못 고치니까 이제 그만 버리시지요.” 하고는 손도 대 보지 않고 가버렸었다. 요새는 부품의 보관기간이 예전보다 더 짧아졌다고 한다. 신제품 판매율을 높여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함이라나 뭐라나. 믿거나 말거나.


뉴질랜드에 사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30여년 쓴 독일제 압력밥솥이 요새 고장나 고치려 하였더니 부품이 독일에서 오는데 3개월이 걸린다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30년간이나 사용한 것이 3개월 기다리면 고쳐진다고 하니 기다리는 보람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버린 짤순이 세탁기는 3개월이 아니라 채 3분도 안돼서 못 고친다고 버리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래 간직해온 것을 버리는 마음은 같이 살던 식구중 하나를 분가시키는 마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더 좋은 것으로 재탄생하기를 바라며 이제 다리미를 재활용 쓰레기통에 넣어야겠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슴속에 간직한 응어리나 욕심을 비우는 것이 아닐는지.


2016년 6월 10일

하늘빛





'이야기 흐름속으로 > 내가 쓰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 이름이란?  (0) 2016.07.04
얼마나 더 살아야  (0) 2016.06.22
우리도 그들처럼  (0) 2016.06.01
사랑보다 달콤한......  (0) 2016.05.19
짬뽕집 주차장  (0) 2016.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