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맞춤법 - 그대도 자유를 원하시나?

korman 2017. 3. 22. 17:53




맞춤법 - 그대도 자유를 원하시나?


인터넷을 통해서 ㅅ스포츠 신문의 기사를 보다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신문사의 기자가 쓴 신문기사라고 보기에는 일부 문장의 문맥이나 맞춤법이 많이 거슬렸기 때문이다. 이 신문에는 작년에도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그 때도 맞춤법에 관한 문제였다. 아마추어인 내가 좀 거북스러웠으니 같은 신문의 다른 기자들이 보았다 해도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답변을 기대하고 쓴 이메일은 아니지만 작년에 보낸 것에나 며칠 전에 보낸 것에나 묵묵부답이다. 이 글을 쓰기 전에 그 기사를 다시 찾았다. 회신은 없었지만 그러나 내가 이메일을 보낸 2시간 후 그 부분은 모두 수정되어 있었다. 그나마 기자의 자존심은 지킨 것 같았다.


지금은 잠잠하지만 ㅂ아무개라는 분이 국내로 돌아오자 그를 경쟁자로 생각하신 분들께서 많은 이야기를 하셨다. 그의 행보를 가지고 흠집 잡는 일도 많았다. 그런 것들 중에 특히 ㄴ인터넷신문의 기자 한 분이 그가 어떤 방명록에 “있습니다”로 써야 할 것을 “있읍니다”라 썼다하여 다른 기사는 없이 단지 그 부분만 사진을 찍어 맞춤법도 모른다고 조롱하는 듯한 기사를 올린 것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정중하게 이메일을 보냈다. ‘기자님 연세가 어찌 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분 세대에는 그것이 맞는 맞춤법이었습니다. ……기자님께서 맞춤법이 틀린 걸 아신다면 맞춤법의 역사에 대해서도 아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나도 그의 맞춤법이 틀렸다는 걸 알았지만 이메일을 보낸 이유는 역시 맞춤법의 역사를 모르는 철없는 독자들께서 그 기사에 ㄲㄲㄲㅎㅎㅎ을 댓글로 수없이 달아 같이 조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개된 장소에서 남의 맞춤법 틀린 건 조롱하면서 자기들이 초성만을 사용하는 것은 괜찮다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도 회신은 없었다. 그의 지적이 현 맞춤법으로는 맞는 것이니 회신하고 말고 할 것은 아니었으나 기자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기사를 써야한다면 기사에서 조롱하는 듯한 뉘앙스는 풍기지 말았어야 했다. 구세대 사람의 맞춤법 틀린 것을 꼬집으려면 맞춤법의 역사도 같이 기술하던가. 맞춤법 틀린 것이야 그분의 흠이지만 글 쓰는 데 프로인 기자라는 분이 맞춤법의 역사를 몰랐다면 그건 기자의 흠이기 때문이다.


민족지라는 ㅈ일보, 그러나 대한민국의 대표신문들 중의 하나인 그 신문의 기자들도 맞춤법에서 자유롭지는 못하였는지 가끔 내게 발견되는 것이 있다. ‘ㅚ’와 ‘ㅙ’, ‘ㅔ’와 ‘ㅐ’의 구분이다. 이 부분은 하도 틀리는 곳이 많으니 아마 조금 있으면 두 개를 같은 의미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맞춤법을 고칠지도 모르겠다. TV의 뉴스 자막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방송의 프로그램 자막에서도 틀릴 때가 가끔 발견된다. 뉴스자막이 틀리니 멀쩡한 단어를 망가뜨리는 오락프로그램에서야 더할 나위 없다. 내 자식들도 나와 문자를 주고받을 때 이 부분은 매번 틀린다. 애비와 같이 나이 먹어가는 자식들에게 한 번 이야기한 것을 때마다 반복 할 수 없어 그냥 넘어간다. 해당 기자에게도 이메일을 보냈다. 그는 그 날로 회신을 해 왔다. 잘 살피지 못하고 기사를 올린 자신의 불찰이었다고.


또 다른 ㅈ일보, 일본에 혼자 여행을 갔다가 예약한 방에 있었던 자살자의 시체 때문에 일본 경찰서에서 곤혹스럽게 조사를 받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의 기사를 실으며 그 지방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같이 올렸다. 그런데 지도를 살피다 나는 실없이 씁쓸하게 웃었다. 지명이 한자로 표기되었고 동해의 독도는 편집하여 가리고 그 위에 日本海라 적어놓은 지도였다. 일본에서 만든 지도가 분명한데 그 기사에 왜 그런 지도가 올려져야 했는지 의아스럽기까지 하였다. 지도를 보면 일본신문기사를 그대로 해석만 하여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가 독도나 동해를 잘못 표기하면 불같이 일어나 야단을 치는 우리나라 굴지의 신문이다. 참 이해 못할 기사였다. 이건 맞춤법에 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해명 같은 것은 오지 않았지만 다시 찾아본 그 기사엔 기사 대신에 인터넷회사에서 올린 ‘해당 언론사의 요청으로 삭제된 기사입니다.’라는 안내문이 올려져 있었다. 삭제는 되었지만 애초 생각 없이 실은 지도 한 컷은 그 신문의 무책임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나야 그것으로부터 절대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아마추어니까 내가 쓰는 이 글 어딘가에도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틀린 곳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신문이나 방송은 다르다. 나처럼 그런 것에서 헤어나야 하는 사람들이 배울 수 있는 곳이 늘 접촉이 쉬운 그곳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망가진 단어들에 물들고 있는 청소년들이야 더욱 필요한 것이 신문이나 TV의 정확한 표기이다. 그래서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아마추어에게도 쉽게 발견되는 것을 살피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기사는 기자가 쓴다고 그대로 활자화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교정하고 위로 올라가면서 층층이 살피고 고치고 그리고 올리는 것이 기사일 텐데.


또 쓸데없는데 이메일 보내며 손가락 운동 하였나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컴퓨터 워드 프로그램에서는 맞춤법이 틀리면 빨간 밑줄이 생긴다. 그래서 내가 사용한 것이 맞는지 틀리는지 사전을 찾아 확인도 가능하다. 그래도 그 맞춤법과 띄어쓰기에서 자유로우려면 평생 공부를 하여도 모자랄 것 같다.


2017년 3월 21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