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틀린 말 아니면 익숙한 말로 하자

korman 2019. 8. 12. 19:19





틀린 말 아니면 익숙한 말로 하자


수십 년 전에 축구중계를 본 사람들은 ‘에리아(Area)’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경기장 내의 어떤 특정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게 귀에 익어 들어왔는데 어느 날 모 방송국에 새로운 해설자로 참여하신분이 그 당시까지 귀에 익은 에리아를 버리고 ‘에어리어’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 분은 자연스럽게 에어리어라 발음 하였지만 당시까지 다른 분과 ‘에리아’로 말을 주고받던 아나운서는 익숙지 않은 ‘에어리어’에 조금은 자연스럽지 못한 말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영어 발음은 그 분 발음이 맞는다고 알고 있었으면서도 듣는 나는 참 거기에 귀가 적응될 때 까지 참 어색하였다. 지금은 보편적으로 다른 방송의 중계진들도 에어리어라 말을 하니 이상하진 않지만 아직 난 누구와 축구 이야기를 할 때 무의식적으로 에어리어 보다는 에리아가 더 자연스럽게 입술을 통과한다. 영어 발음기호에서 그건 에어리어로 발음하여야 된다는 걸 알았지만 에리아로 발음하는 선생님에게서 처음 영어를 배웠으니 축구중계가 아니라도 에리아가 우선 편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일본식 발음 아니었나 생각되는데 축구에 사용하는 용어는 맞으나 발음이 국제화 되지 못한 것이었으니 이런 경우는 고쳐져야 마땅한 것이라 하겠다.


그 분이 그렇게 발음을 고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어떤 분이 새로 등장하더니만 이번에는 우리말로 잘해 왔던 ‘추가시간’이라는 것을 ‘인져리 타임’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와 짝을 이룬 아나운서는 그 때가지는 추가시간이라 잘 해 왔음에도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그와 새로운 용어로 말을 맞추는데 전혀 어색함이 없어 보였다. 다른 시청자들도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새로운 용어 자체를 그 때 처음 들었는지라 무슨 의미인지도 잘 몰랐다. 다른 방송에서도 그리 용어를 바꿨나 채널을 돌려봐도 다른 분들은 하던 대로 추가시간이라 잘 하고 있었다.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찾아보았더니 “스포츠 경기에서 선수의 부상으로 야기되는 추가시간(additional time)”이라 되어 있다. 물론 축구경기에서 많이 쓴다는 설명도 있었다. 그 외에 중계진에 따라 로스트 타임, 엑스트라 타임 등도 사용한다고 되어 있다. 물론 경기시간이 정해진 것 보다 늘어나는 주된 요인이 선수들의 부상치료이긴 하지만 부상 외에 날씨나 관중사정 등 다른 요인도 없는 건 아니다. 그러니 부상만을 뜻하는 용어로 추가시간을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하겠다. 해외 스포츠방송이나 FIFA에서 어떤 용어를 주로 쓰고 있나 살펴본 적이 있는데 ‘Additional time'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쓰고 있었다. 이는 우리말로 ’추가시간‘이니 틀린 말이 아닐진대 시청자들의 귀에 익은 말을 버리고 굳이 ’인져리 타임 (Injury time)‘이라 바꾸어 쓸 필요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국제적으로 대중화 되어  있는 용어에서 벗어난 자체가 특정인의 멋 내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새도 가끔 BBC나 야후 인터넷 판을 보기는 하지만 추가시간은 additional time으로 표기하는 게 가장 많은 듯하다.


공중파 방송들이 책임 없이 중계를 포기하여 축구국가대표 경기를 케이블방송에서 단독 중계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 모 케이블방송에서 하는 중계를 보는데 아나운서가 공이 선수의 머리에 닿을 때마다 계속 ‘헤더’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해설자는 그게 익숙지 않은지 그렇다고 아나운서가 하는데 자기는 헤딩이라고 하기 어색하니 의식적으로 헤더라고 하였다가 무의식적으로 헤딩이라는 말이 나오곤 하였다. 아나운서의 경우에도 자연스럽지 못한 말투로 보아 자신만의 영역을 위한 의식적인 용어선택임을 느끼게 하였다. 축구중계를 그렇게 많이 봐 왔지만 ‘헤더’라는 말은 처음 듣는 용어라 헤딩을 하는 사람을 이야기 하나 생각하였는데 몇 장면 이어 들으니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혜딩’을 칭하는 말이었다. 그럼 우리가 지금까지 들어왔던 헤딩은 잘못된 것인가 하여 또 찾아봤다. 그 두 가지 용어는 FIFA에서도 섞어 쓰는 다 맞는 말이었다. 외국의 중계 아나운서도 어떤 사람은 헤더라는 말을 썼다. 그렇다면 “헤딩”이라는 용어가 틀린 것이 나닐진대 자신만의 영역을 내세우기 위하여 애써 부자연스럽게 의식적으로 ‘헤더’라 말하는 것보다는 모든 시청자들이 지금까지 들어온 귀에 익은 ‘헤딩’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합당하지 않을까? 방송은 아나운서를 위한 영역이 아니라 시청자들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방송에선 중계진이 바뀌어도 왜 그러는지 그 자연스럽지 못한 ‘헤더’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헤더 보다는 헤딩이 더 박진감 넘치게 들리기도 하는데....


스포츠영역뿐만 아니라 여러 영역에서 우리는 잘못된 일본식 용어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지금 그것들을 원래의 발생지 발음이나 우리말로 고쳐나가고 있지만 워낙 광범위하고 또 뿌리가 깊어 모두 바로잡혀지려면 아직 상당한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전문가들의 노력과 사용하는 사람들의 인식에 따라 변화는 빨리 이루어 질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쓰는 전문용어 및 그 용어의 우리말 번역이 틀린 게 아니고 세계적으로 다 사용하는 오른 용어인데도 불구하고 중계방송 같은 것에서 모든 시청자가 익숙한 용어를 떠나 자신만의 영역을 위한 다른 용어로 바꾸어 부른다면 이는 좀 과도한 처사가 아닌가 여겨진다. 지금까지 사용해왔던 귀에 익은 용어가 틀린 것이라면 시청자들도 고쳐 듣고 말하고 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하면 그냥 익숙하게 하던 대로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2019년 8월 12일

인져리타임과 헤더를 불편하게 들으며

하늘빛 

음악:유튜브

그림:야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