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문에 부유해 졌다?
요즈음 난 내가 강남에서도 특히 부유한 동네 한복판에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착각이 일어날 때가 있다. 아니면 근래에 와서 동네 사람들이 로토 1등에 많이 당첨되었나 혹은 종부세가 부담스러워 부유한 동네 살던 사람들이 부동산 처분하고 우리 동네로 이사 왔나 등 허접한 생각을 할 때도 있다.
6.25전쟁 중 연합군의 인천상륙지점 중 하나인 내가 사는 동네는 바다가 메워져 토지가 되었고 바둑판 모양으로 나뉘어 주택들이 들어섰다. 대부분 비슷한 모양의, 사람들이 ‘집장사 집’이라고 부르는 단독주택 단지가 있었다. 물론 아파트 구역도 있어 여러 회사에서 아파트를 건설하였고 나도 1990년에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 동네로 이사 와 아직 살고 있으니 지금은 이 동네에서 원주민은 못되더라도 준원주민 소리는 듣는다.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니 인구유입이 많아지고 그에 따라 각종 편의 시설이나 생활과 밀접한 점포들이 새로 지어지는 도로변 빌딩마다 많이 생겨나고 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유입되니 인구는 자고 일어나면 쑥쑥 크는 성장기 아이처럼 쑥쑥 늘어나 동네가 복잡해지기 시작하였다.
인구가 많아지니 살집이 모자랐던지 언제부터인가 단독주택단지에서 집이 하나 둘 없어지더니만 그 자리에 빌라라고 불리는 7층 이상의 공동주택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세월이 가더니 요새는 단독주택은 말 그대로 거의 사라지고 그 자리는 모두 빌라가 차지하였다. 이제는 더 지을 곳이 없을 것 같은데 봄이 되면 또 어딘가에서 공사소음이 들릴 것이다. 세대수와 인구증가에 따라 차량도 늘어나 인도를 깎아 개구리주차장을 만들었지만 이면도로변이 온통 불법주차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 비싸다는 외제차량은 최근까지 별로 없었다. 내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본 차 중에는 비싸다는 외제차를 제일 먼저 본 것은 5년 전쯤에 재래시장 건너편에 새빌딩이 들어서더니 1층 정육점 앞에 주차되기 시작한 삼지창을 엔진룸 뚜껑위에 올려놓은 ‘마세라띠’라는 차였다. 그 정육점 주인은 젊은 부부였는데 그들의 차라고 하였다. 그 후로 오랫동안 자동차에 관한한 내가 관심을 둘만한 일은 별로 일어나지 않았다.
길거리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때는 코로나가 번지고 답답한 시기가 시작된 지난 봄부터였다. 동네에서는 지나가는 차도 보기 힘들던 ‘포르쉐’가 몇 대씩 길거리에 주차되더니 정육점 앞에서만 보이던 그 삼지창은 심심치 않게 빌라 주차장에서도 보이고 ‘벤츠’나 ‘BMW’는 눈길 가는 곳 마다 무더기로 보였다. BMW야 예전부터 젊은 층에서 좋아한다고 하였지만 동네에 주차된 벤츠가 SUV형이 많고 세단형도 초등학교 학습용 지구본만한 벤츠마크가 앞그릴에 붙은 것이 많은 것을 보면 벤츠도 젊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것 같다. 지금은 이 두 차종을 합치면 쌍용차만큼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즐비하다고 하면 좀 어폐가 있지만 길거리 주차는 물론 지은지 무척 오래된 빌라 주차장에도 그 비싼 외제차는 드물지 않게 주차되어 있다.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던 집사람도 요새는 "이 외제차들이 왜 이리 많냐"고 할 정도니 많기는 많은 모양이다.
지난여름부터는 갑자기 ‘아우디’가 길거리를 휩쓸고 있다. 아우디는 보태지 않아도 삼성르노만큼 많은 것 같다. 수작업으로 하기 때문에 차 한 대 만드는데 7주 이상 걸린다는, 롤스로이스 만큼 명차라는, ‘벤틀리’도 보인다. 신기한 건 그 많은 외제차가 동네를 주름잡아도 '볼보'는 눈에 뜨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사람의 취미인지 나이든 사람들이 ‘스리쿼터’라 부르는 포드반트럭이 주차하는 빌라의 주차장엔 같은 종류의 번쩍거리는 새 GM반트럭이 드나들고 있다. 요즈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내가 몰아본 이 차량들은 기름바늘 내려가는 게 보일 정도였다. 도시 이면도로에서 이런 큰 반트럭 가지고 다니는 게 불편하지 않는 모양이다.
작은 빌딩 앞에 주차된 대형 ‘링컨컨티넨털’ 옆으로 지나는 ‘폭스바겐’이 무척 왜소하게 보였다. 불매운동은 끝이 났는지 번호판 숫자가 3자리로 시작되는 일본차도 많이 늘었다. 그러나 이제 외제차라도 어정쩡한 브랜드나 일제차 등은 외제차 축에도 못 끼는 게 되었다. 거짓말 좀 보태면 국산차나 외제차나 그 수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또한 국산차도 소형보다는 대형이 많다. 그리고 연예인들이 부러웠는지 새로 산것 같은 '카니발'이라는 차 지붕에는 여지없이 거의 모두 지붕이 하나 더 얹혀져있다. 자동차야 뭐 각자 자기 형편대로 타고 다닐 테니 내가 걱정할 바는 아니지만 운전자를 보면 대부분이 젊은 층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런 현상에 대한 내 의문점은 형편이 거기에 맞으면 좋겠지만 혹 내 집 마련은 요원하고 전세도 자꾸 오르니 상대적으로 ‘자동차라도’라는 생각이 유행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지난 주말 김장 후 아이들과 한 잔 하는데 다른 동네에 사는 사위가 말을 거들었다.
“이 동네에 외제차가 갑자기 많이 늘었네요.”
이 말에 나와 같은 동네에 사는 아들아이가 답하기를
“그러게 말이야. 동네 어디 외제차 렌터카 업체라도 생겼나?”
나도 한 마디 거들었다.
“외제차 렌터카 업체가 생긴들 그 많은 외제차를 보유했을 리도 없고 주차장도 없이 그 비싼 유명외제차를 남의 빌라주차장에 몰래주차 혹은 길거리에 불법주차를 해 놨겠냐? 그래도 롤스로이스나 람보르기니는 아직 없더라.”
큰 길에는 못 나가는지 이면도로에서 개조된 소음기의 굉음을 즐기는 철부지도 있고 미국고속도로를 시끄럽게 한다는 ‘할리데이비스’로 자랑스럽게 소음을 발하는 골목대장족도 있다.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며 부쩍 늘어난 것 같은 119응급차 사이렌 소리가 그 굉음에 섞여 처량함마저 느껴진다.
오늘 낮 지나친 원룸건물 아래는 번호판 숫자가 세 자리로 시작되는 ‘재규어’가 새롭게 주차되어 있었다. 모 인사가 “이혼하거나 사업이 망하면 간다.”라 말씀하신 동네가 코로나 이후 갑자기 서울의 강남만큼 부유해졌다. 그 분이 한 말은 ‘이제 외제차 사면 간다.’는 동네로 바뀌게 될지도 모르겠다. 모든 나라의 자동차가 모든 나라의 부품을 공유하는 시대이니 특수차량이나 브랜드 인지도 외에 외제차라 뭐 특별할 게 있을까 생각하는 건 내 생각일 뿐이겠지만.
2020년 12월 11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