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마담 캉이나 강마담이나

korman 2021. 2. 14. 15:07

야후 한국의 겨울 자연 중에서https://www.goodfon.com/wallpaper/iuzhnaia-koreia-priroda-peizazh-gory-skaly-zima-sneg-derevo.html

마담 캉이나 강마담이나

 

주차장에서 만난 이웃이 내 집에 왔다가는 손녀들을 보더니 손녀들이 많이 켰다는 인사를 건넸다. 아이들은 할아비 집에 수시로 드나들지만 사는 층이 다른 이웃이라 못 보았으니 그리 이야기를 한 것이다.

“내 손녀들이 큰 것만 보이고 댁의 딸님이가 이제 시집 갈 나이가 된 건 모르겠죠?”

“아이들 크는 것만 대견해보이고 그에 비례하여 자신들이 늙어 간다는 건 생각 안 들죠?”

“그러게 말입니다.”

그리 웃으며 서로 설날 복 많이 받고 건강하라는 덕담을 나누고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여자 아이들이라 그런지 커가면서 할아비·할머니 세대에 대하여 궁금한 게 많다. 오늘은 느닷없이 할머니와의 내 연애시절에 대하여 물어왔다. 가장 궁금한 것이 지금처럼 핸드폰도 없었고 집집마다 전화도 많지 않았다며 데이트 약속은 어떻게 하였느냐는 것이었다. 특히 만나기로 약속은 하였는데 사정이 생겨 못 나갈 경우에 어떻게 급하게 연락을 취할 수 있었느냐가 제일 궁금하였다. 요즈음도 길거리, 특히 이면도로변을 자나다 보면 ‘다방’이라는 간판이 가끔 눈에 띄는데 내가 사는 동네도 그런 곳이 두 군데 있다. 예전 다방과 뭐가 다른지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그 때처럼 마담이나 레지로 불리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아이들한테 설명을 하였다. 그 시절 ‘다방’과 한복을 입은 ‘마담’과 그 미담이 전화를 받아 메모를 꽂아주던 메모판과 덕수궁 이야기를. 그랬더니만 이번에는 집중적으로 따르는 질문이 한복 입은 마담에 관한 것이었다. 마담이라는 용어에서부터 한복을 입는 이유까지....난감한 문답이 이어졌다. 아마도 한참을 이어질 연속극이 될 것 같다.

 

그렇게 아이들과 문답을 하다 잊고 있었던 또 다른 마담이 문득 생각났다. 아마 내가 한 30대 중반쯤 되던 시절이었을 것 같다. 하던 일과 관련하여 좀 알아볼 게 있어 그 마담의 본거지를 찾아갔다. 주한 모 대사관 상0관실이었다. 면담 신청을 하며 찾아간 이유를 설명하니 상0관을 보좌하고 있던 한국인 여자분이 나왔다. 그 당시 40대 중반쯤 되어 보였던 좀 많이 찐 것 같은 그 분의 매우 느린 말투는 영화에 나오는 버터를 많이 바르고 그 위에 치즈까지 얹어 놓은 느끼한 목소리에 더하여 트로트에나 사용하는 꺾기와 방송인 서모씨가 끝을 아래로 한 옥타브 죽이는 말투까지 섞여져 무척 불편하게 들렸는데 거기에 불친절을 더하니 참 가관이었다. 뭐 한마디 더 물어볼 기회도 주지 않고 “그런 일이라면 문0원에 가서 「마담 캉」을 찾으세요.” 하고는 얼른 뒷모습을 보였다. 돌아서 가는 그녀의 엉덩이 두 개가 내 친구가 늘 이야기 하던 ‘한 쪽이 조선 땅 반’만 한데 상하좌우로 30cm씩은 이동하는 것처럼 참 요란하게도 흔들렸다.

 

다른 곳에 위치한 그 문0원을 찾았다. 1층에서 안내를 담당하는 여직원이 용건을 물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내 입에서 나온 것은 ‘마담 캉’이 아니라 ‘강마담’을 뵈러 왔다는 것이었다. 그 흔한 다방마다 마담이 있었고 웬만한 술집에도 모두 마담이 있던 시절이었으니 성에 마담을 보태서 부르던 게 입에 붙어있던 때이기도 하지만 대사관에서의 그녀의 불친절에 더하여 ‘마담 캉’이라는 이름도 아니고 직함도 아닌 익숙하지 않은 어색한 호칭에 버릇대로(약간은 의도적으로) 그냥 ‘강마담’이라고 호칭을 한 것이다. 안내하는 여직원의 얼굴에 불쾌한 표정이 역역하였다. 그러 것이 그 당시 ‘강마담’과 ‘마담 캉’사이에는 건너지 못하는 강이 존재하는 것 같은 사회적 거리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2층으로 전화를 하더니 나에게 들으라는 듯이 “마담 캉, 손님 왔습니다.”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마담이라는 호칭 때문이었는지 내 선입견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문0원의 그녀들도 그리 친절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아무튼 볼일을 보고 나오면서 ‘강마담’이나 ‘마담 캉’이나 우리식으로 생각하면 모두가 그저 ‘강부인’인일 따름인데 좋은 이름 놔두고 스스로 마담이라 칭하면서 불쾌하게 생각할 일도 못되는 것을, 그러나 속으로는 좀 키득거려졌다. 그 시절 ‘마담 캉’이 다방에 가서 ‘강마담’에게 누군가 ‘마담 캉’을 찾으면 안내 부탁한다는 말을 남겼다면 강마담의 표정은 어떠하였을까? 지금 강마담은 많이 없어졌을 테지만 ‘마담 캉’은 아직도 존재하는지 모를 일이다.

 

2021년 2월 9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C5H1KkMkfOk 링크 <p Venice · Chris Bo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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