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세월의 무게

korman 2021. 2. 5. 21:16

야후 겨울 이미지

세월의 무게

전화 통화야 늘 하는 거지만 요새는 시국이 시국인지라 손위 형제들과 자주 연락을 한다. 내가 좀 미적거리고 있어도 형님이나 누님은 그새를 참지 못하시고 전화를 걸어오신다. 내 나이도 그리 작은 나이는 아니지만 모두 연로하신 분들이다 보니, 요새는 연로하다는 표현이 몇 살부터인지 불분명하지만, 당신들 보다는 동생네 걱정이 많으시다. 당신들이야 다들 단출하게 두 분씩 계시고 당신 자식들이나 동생들 오지 못하게 하시면서 다른 사람들 대할 기회가 별로 없으니 난시적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도 내 자식들은 아이들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나와 집사람은 어린 손주들과 접촉이 잦으니 행여 당신들 뵙는다고 오가다 잘못되면 다른 집 아이들까지 피해를 줄 수 있으니 행여 오갈 생각 말라고 늘 당부하신다. 그러니 전화라도 자주 하는 수밖에.

생신이 되었어도 전에 하던 대로 점심이나 저녁 모임 한다는 소집령 없으니 그저 전화로 립서비스 한 마디 하고 끊는다. 그런데 다들 연세도 많으시고 여기저기 아픈데도 있으니 반갑지 않게 흘러가는 세월 속에 새롭게 맞이하는 생신이 뭐 그리 기쁠까 하여 생신 축하한다는 말을 해야 하는지 참 망설여진다. 그래서 한다하는 말이 “아침에 미역국은 잘 드셨어요?”라고 어색하게 묻는 게 고작이다. 엊그제는 큰형님 생신이 되어 형님 핸드폰으로 전화를 드렸더니 형수가 받았다.

“별일 없으시죠? 형님은요?”

“집에만 있기 답답하다고 오랜만에 공원 산책이나 하고 오겠다고 나갔어요.”

“핸드폰은 왜 안 가지고 가셨어요?”

“아침나절에 동생들한테서 전화 올 테니 가지고 나가라고 했는데 무겁다고 놔두고 나갔어요.”

핸드폰 무게가 산책하는데 얼마만큼의 짐이 되는지 나는 아직 느끼지 못하니 형님의 무게를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문득 이제 그만 입으라며 집사람이 장롱 깊숙이 넣어놓은 (입지 말라며 왜 안 버리고 장롱에 넣어 놓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래된 짧은 점퍼를 봄이 가까워지면 입겠다고 찾아 들었다가 그 무게에 놀라 얼른 집어넣은 기억이 났다. 요새 옷이나 신발들은 겨울용이라 하더라도 무척 가볍다. 나 자신 두꺼운 내복을 거쳐 온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간사함인지 오랫동안 입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몇 년 전까지 봄가을에는 늘 꺼내 입던 점퍼의 무게에 놀랐던 것이다. 80 중반에 들어선 형님의 전화기 무게에 대하여 나는 이제 옷의 무게를 느껴야 하는 나이가 된 모양이다. 내가 가진 모든 옷을 통틀어 가장 미련이 가는 옷인데 이제는 그 무게가 거추장스러워 겨울이 지나도 손이 가지 않겠구나 하는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내 집사람도 시장에 나갈 때 가끔 전화기를 두고 나간다. 왜냐고 물으면 전화기가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하였다. 난 전화기 무게가 문제가 아니고 전화기를 안 가지고 나왔다는 허전함이 무겁던데.....

점심때쯤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화기가 그렇게 무거워요?”

“자네도 내 나이가 돼보게.”

“아침 식사는 미역국하고 잘 드셨어요?”

“에미(며느리)가 잘 차려줘서 많이 먹었네. 혼자 먹어서 미안하네.”

순간 내가 참 좋아하는 유행가 가사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1”

등이 휘어질 것 같은 어려운 삶을 살아온 인생은 아니라도 아마도 모두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는 못하는 것 같다. 좀 있으면 나에게도 형님의 전화기 무게가 문제가 아니라 숟가락 젓가락의 무게를 느낄 때도 오지 않겠나. 세월은 빠르다 하였으니 곧.

2021년 2월 5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mJ2nDInW3tM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 권지혜 색소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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