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한가위-추석(秋夕)에

korman 2021. 9. 20. 13:58

창경궁의 가을하늘

한가위-추석(秋夕)에

 

사회가 어지럽거나 살림살이가 어려워져도 흐르는 세월은 멈추질 않으니 코로나 같은 역병이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말거나 계절은 변화하고 한가위(추석,秋夕)라는 명절은 흐르는 세월 따라 또 돌아왔다. 추석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헤어져 살던 식구들이 모이고 명절이라는 핑계로 평소에는 자주 대하지 못하던 음식들도 같이 즐길 수 있으니 일 년에 몇 번은 자손들을 한 자리에 강제로라도 모이게 하시려고 제사다 차례다 마련하신 건 조상님들의 혜안이라 할 수 있겠다. 현대에 들어와서 모이는 데 대한 부작용도 일어나고는 있지만 이렇게라도 모이지 않으면 2촌정도만 건너도 얼굴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진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거리두기’라는 게 생겼다.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곳들은 아예 폐쇄시키면서 조상님 산소 방문도 자제하라는 사회적 명도 내려졌다. 내 형제들도 작년에 이어 올해도 모임은 없는 것으로 하였다. 많은 가정에서 그리 했겠지만 코로나 이전에는 형제들이 모두 자식들에 손주들까지 대동하고 큰형님 댁에 모이고 산소도 되도록 같이 갔었다. 갑자기 나타난 코비드19(COVID19)라는 병균이 벌써 두 해씩이나 모든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추석이라는 이름은 지울 수 없는지 집에서 가까운 동네 재래시장은 평소보다 붐비고 있다. 명절에 많은 친척들과 같이 모이는 것을 의도적으로 싫어해서 시간이 충분히 있음에도 각종 핑계거리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고 보도가 되곤 했었는데 코로나라는 이름이 자연적으로 그런 사람들의 걱정꺼리를 덜어주는 친절까지 베풀고 있다.

 

명절이 되면 요새 젊은 층이나 아이들은 알지도 못하고 쓰지도 않는 단어가 있다. 추석엔 ‘추석빔’, 설에는 ‘설빔’이 그것이다. 이제는 나이 든 사람들도 잊고 있을 이 단어가 명절이 되면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늘 떠오르곤 한다. 요새처럼 물자가 흔하지도 않고 옷 한 벌을 사는 것도 쉽지 않았던 시절, 명절을 핑계로, 어른들과 조상님들을 뵐 때는 깨끗한 옷을 입어야 예의라는 핑계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보통 새 옷을 사 주었다. 자식들이 많은 집이나 특별히 어려운 집에서는 있는 옷을 깨끗하게 하여 입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려운 집이라도 아이들에게 만큼은 새 옷을 장만하여 주는 가정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옷을 ‘빔’이라 하였는데 그래서 추석에 사 주면 추석빔, 설에 사주면 설빔이 되었던 것이다. 요새는 아이들이 별로 없는 대신에 늘 새 옷을 사주고 있으니 날마다 ‘빔’이라 해도 별로 어색하지가 않겠다.

 

한가위-추석(秋夕)-Korean Thanksgiving day, 현재 우리가 부르고 있는 이름이다. 중국 사람들은 중추절(仲秋節, Mid-Autumn Festival)이라 부른다고 한다. 8월의 큰 날이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고 하는데 단어 자체의 의미는 모두가 깊은 가을 즉, 가을의 가운데를 가리키고 있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가을이 깊었다고 이야기 할 때는 산과 들에 단풍이 한창일 때를 가리킨다. 내가 어렸을 때는 온 산야가 울긋불긋 하지는 않았더라도 단풍은 여기저기 많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 ‘추석빔’이라는 옷을 입고 밖에 나가면 양지쪽을 찾아다닌 기억도 있다. 그런데 요즈음은 가을의 가운데라는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여름의 자락이 물러가질 않고 있다. 물론 반바지차림으로 아침에 창문을 열면 종아리가 좀 시리기는 하지만 한 낮의 기온은 여태 여름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그래서 요즈음도 거리엔 반바지, 반팔 차림의 젊은 층이 많다.

 

홍콩에 사는 오래된 중국계 친구가 있다. 중국이나 우리나 추석과 설은 같은 명절로 지내고 있으니 그는 늘 명절 때가 되면 이메일이나 핸드폰으로 관련 카드를 보내온다. 이번엔 채팅 어플을 통하여 카드를 보내왔다. 내가 모든 단어가 가을의 한 가운데라고 하는데 한국은 여태 한여름이라고 농담을 하였더니 홍콩은 연일 32도가 넘는다고 받아 넘겼다. 지구 자체의 기온이 많이 높아졌다고 하는데 추석도 그 영향을 받는 모양이다. 이러다 우리의 추석도 32도에서 지내야 하는 건 아닌지 미래의 기후가 염려스럽다.

 

오늘 저녁에 아이들이 저녁을 같이하러 온다고 하기로 소주 6병을 냉장고에 넣었다. 집사람이 대작을 못하니 소주 한 병 혼자 마시면 머리가 아파 혼술은 그만 두었는데 오랜만에 아들, 사위와 한 잔 하려면 6병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2021년 9월 20일

추석 전 날에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Ikqex6Gyp1M 링크
Canon in D - Michael Gu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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