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
세월이 흐르면 흘러가는 시간을 따라 많은 것들이 변한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변하고 그와 관련된 부차적인 것들도 변한다. 심지어는 기후까지도 변하여 지금은 사과의 산지가 강원도까지 올라갔다고 하고 귤의 산지도 충청도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예전 만화에서나 그려졌던 공상적인 것들이 현실화되는 시대가 되었다. 유행이라는 단어를 좇아 정기적으로 돌고 도는 것들도 있지만 그 많은 변화들 가운데서 변화되지 않고 굳건하게 제자리를 지키는 것들도 있다.
이러한 세월에 따라 변화하는 것들의 선봉에 선 군상이 우리 인간일 것이다. 동물군이 모두 그렇듯이 인간도 세월 따라 쇠퇴라는, 즉 늙는다는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소멸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것은 자신은 쇠퇴해 가면서도 스스로 많은 물건들을 창조하고 진화시킨다는 것이다. 인간이야 늙으면 볼품이 없어지지만 그 인간이 진화를 부여한 많은 물건들은 최신 기술이라 하여 우러러보여지고, 진화하지 않고 오랫동안 제자리에 있는 물건들은 골동품이라 하여 굳건하게 그 가치를 높이고 있다. 사물에 지속적인 변화를 부여한 인간은 그러나 간혹 사물들 간의 어울림은 생각지 못하는, 아니 생각지 않는 자기모순에 빠지기도 한다.
주요 국경일이 되면 전국 간선도로변의 가로등 기둥에 설치된 깃대꽂이에는 많은 태극기들이 걸린다. 요새는 지자체마다 상시 태극기 설치 거리를 만드는 게 번지기도 한다. 산들바람에 군무를 추는 듯 흔들리는 태극기의 물결은 국민적 애국심을 떠나 예술적 가치마저 느끼게 한다. 그러나 때로 인간은 인간이 세월 따라 진화시킨 것들의 상호 조화를 생각지 않으므로 인하여 태극기의 아름다운 군무에 큰 흠집을 내곤 한다. 도로변 가로등에 설치된 깃대는 모두 일정한 높이로 되어있으며 태극기를 꽂을 경우 차도 쪽으로 30(?)도 정도 기울게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트럭이나 버스 등 대형차들이 주로 태극기와 가까운 차로로 많이 통행을 하고 있다. 문제는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자동차들은 예전과 다르게 그 높이가 많이 높아진 반면에 깃대꽂이의 높이는 전혀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국경일, 태극기가 걸린 그런 간선도로변에서는 깃대가 부러지거나 꺾인 태극기들과 태극기의 아랫부분이 몹시 훼손되었거나 더러워진 것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모두가 높아진 자동차들에 태극기가 걸려 그리되는 것이다. 이런 것에서 인간은 자기모순에 빠져있다. 필요에 의하여 자동차의 높이는 높여 놓았지만 가로등에 설치된 깃대꽂이의 높이는 생각지 않음으로 인한 불협화음이 그것이다. 물론 거리에 태극기를 설치하고 거두어들이는 담당자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광복절이나 3.1절 아침에 부러진 태극기를 봐야겠냐”고 휴일 당직자를 찾아 전화를 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또한 블로그를 찾아보면 이런 훼손된 태극기에 대하여 언급한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도 깃대꽂이의 높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하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인간은 자신이 변하는 것에 더하여 모든 사물에 변화를 주고 있으면서도 때로는 변화의 상호 화합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게으른 면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실 기술적으로 깃대꽂이의 높이를 조절하는 문제는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닌 듯싶다. 볼트 넛트로 가로등 기둥에 조여 놓았으니 그걸 풀어 좀 높은 쪽으로 이동시키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런 걸 고치기 위해서는 절차라는 게 있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그 높이를 조절하는 데 무슨 복잡한 절차가 필요할까 생각되지만 그 일을 담당하는 조직의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과 관련된 ‘규정’이라는 것부터 고쳐야 할 테니 짧은 세월 내에 고쳐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지금쯤 조직 내에서 규정을 고치고 있다 하더라도 시행이 되려면 또 시간이 필요하니 올해 현충일이나 광복절에도 깃대가 꺾인 태극기를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가로등 기둥에 설치된 깃대꽂이는 아무리 변화를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공동품의 영역에 들어가지는 못할 것 같은데 제자리를 지킬 필요가 있을까? 좀 더 현실적인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2022년 5월 28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2LWctGryMPM 링크
태극기 휘날리며 OST 피아노 + 스트링 커버 [VST : Keyscape - Cinematic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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