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korman 2022. 6. 21. 11:49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나이를 먹다보니 내가 직접 다녀야 할 행사나 경조사가 많이 줄어들었고 또 지난 수년간은 코로나 사태라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세상’이 이어지면서 다중이 모이는 행사가 오랫동안 통제되었으므로 정장을 차려입어야 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또 인사치례를 해야 할 행사가 있었다 하더라도 요새는 알림장에 은행 계좌번호가 당연히 적혀오니 코로나 핑계로 웬만하면 송금으로 대신했으니 옷을 차려입어야 할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좋을 듯싶다. 그리고 나 스스로 정장 입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다보니 꼭 가 야 한다면 어떤 행사냐에 따라 그저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 정도로만 입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양복 정장을 입고 넥타이까지 곁들이면 참 불편하기 짝이 없다. 꼭 넥타이를 매야 한다면 매더라도 행사장을 벗어나면 즉시 풀어 주머니에 넣곤 한다.

 

지난 일요일, 꼭 참석해야만 할 친척의 결혼식 행사가 있어 오랜만에 양복 정장을 차려입었었다. 불편한 건 둘째 치더라도 정장을 입은 내 모습을 본지가 오래되어 어색하게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기왕 내친김에 그동안 별로 신어본 적이 없는, 한 켤레밖에 없지만, 정장 구두를 꺼냈다. 지금까지는 정장을 차려입어도 신발은 구두처럼 된 캐주얼 신발을 주로 신었다. 누구나 느끼겠지만 정장구두는 좀 무겁고 발이 편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언뜻 “신발을 안 신고 오래 놔두면 못쓰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기억나 불편하더라도 신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신발장을 열었다. 갑자기 왜 안 신던 구두를 신으려고 하냐는 집사람의 의아심을 “캐주얼 신발을 좋아하는 대통령도 취임식 때는 부인 충고를 받아들여 정장구두를 신었다는데 난 마누라가 살펴주지 않으니 나 스스로라도 챙겨야지 그리고 신발을 오래 안 신으면 망가진대잖아”로 응수하면서.

 

사실 이 구두는 작은아이 결혼식 때 새로 장만한 것이라 10년 정도 지난 것이지만 별로 신지를 않았기 때문에 아직 뒤축에 흠도 지지 않은 새 구두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별로 신어본 기억이 없으니 당연히 발목부터 불편하였다. 인천의 내가 사는 동네에서 서울의 문정역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동차는 인천의 출발하는 역에 세워두고(주차비: 하루 종일 1,000원) 두 번을 갈아타야 하는 전철을 이용하다보니 당연히 오르락내리락 하는 계단도 많았고 걷는 거리도 길었다. 그런데 예식장에 도착을 했을 때 구두 뒤꿈치 한편이 순조로운 걸음걸이를 방해하였다. 발을 들고 허리를 비틀어 뒤축을 살펴보니 바깥쪽으로부터 뒤축이 쪼개지면서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문득 집을 나설 때 염려하였던 게 생각났다. ‘이게 그건가?’

 

어이없게도 식사를 마치고 건물을 나설 때는 양쪽 모두 뒤축이 없었다. 한 번에 크게 떨어져 나갔으면 금방 알았을 텐데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떨어져 나가 그리 되었나보다. 불편한 걸음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역을 찾았을 때는 앞창마저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아마 나를 본 많은 사람들이 내 구두를 한 번씩은 바라봤을 것이다. 그 구두를 그대로 신고 그렇게 또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며 인천역으로 오려니 참 난감하였다.  그래서 잠실역에 내려 신발가게 찾아 터덜터덜 상가로 향했다. 새신을 신고 펄쩍 뛰어보지는 않았지만 그 오래된 새 구두는 판매하시는 분의 권고대로 거기에 버렸다. 진짜 새신이었지만 위의 가죽부분만 남았으니 아무리 아까워도 어찌 달리 생각해 볼 여지가 없었다.

 

신발을 판매하시는 분은 자신들이 쓰는 말로 그걸 “신발이 녹았다”고 한다고 했다. 나도 그 말이 맞는다고 동조하였다. 그의 말을 되새기며 다시 지하철에 올랐다. “집에서 오래 안신은 신발은 먼 길 오시기 전에 한 30분 정도 신고 동네에 다녀보세요. 신발이 녹는 건 30분정도 지나야 나타나거든요. 주말엔 그런 분이 몇 분씩 찾아오십니다. 대게 정장 신발은 결혼식 같은 게 없으면 오래 안 신거든요”. 그래서 새 신발 버리고 다른 새 신발이 생겼다. 문득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로 시작되는 시의 한 줄이 거기에서 갑자기 떠올랐다. ‘산산이 부서진 신발창이여’.

 

2022년 6월 21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jfgSKDNht2Q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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