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무뚝뚝한 한국인 속에 생각나는 사람

korman 2006. 9. 18. 15:24

 

 

지난날 나는 영국 런던에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윈저宮 앞 호텔에서 두 달 정도를 혼자 기거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해외여행이 그리 쉽지 않은 시절이었고 또 런던도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사람 만나기는 매우 어려웠다. 또한 관광객들도 런던에서 한 시간 거리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윈저궁 앞에 머무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는 그곳에 있는 회사와 같이 일을 해야 했고 해외 경험도 별로 없었던 처지였기 때문에 혼자 장기간 호텔에 머무는 동양사람에게 호텔 직원들도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이제 호텔 직원들과도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워진 어느 날 나는 모든 것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곳에 혼자가 된지 한달정도 지난 후였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 친구들과의 소주잔에 대한 그리움,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그리움, 우리 음식에 대한 그리움 등등...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야 가끔 전화로 해소하고 소주잔에 대한 그리움은 호텔 바에서 진정시키고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그리움은 방의 유리에 독백을 하거나 메모를 하면서 해소 하지만 우리 음식에 대한 그리움은 그리움을 넘어 헛것이 보일 정도였다. 한 달여를 아침은 베이콘, 소세지 구운 것, 계란후라이, 쥬스와 커피, 빵 한 조각으로 때우고 점심은 샌드위치, 저녁은 또... 뭘 먹은들 김치를 먹어야 하는 이 속이 가만히 있겠는가.


알고 지내는 사람마다 붙들고 한국식당을 물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호텔 직원들도 없었다. 한국이라는 나라도 잘 모르던 시절 (지금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식당을 아는 사람이 있겠는가. 런던도 아니고 이런 한가한 조그마한 동네에서. 그러던 어느 날 특별히 친절하게 대해주던 호텔직원 하나가 런던의 자기 친구에게서 들었다며 런던 지하철 나이트 브릿지 정거장에 가면 한국식당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고 기쁜 얼굴로 다가와 어여쁘게 이야기 해 주었다. 꼭 껴안고 뽀뽀라도 해 주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좌우간


토요일 런던행 직행버스를 타고 런던 교외의 종점에 내렸다. 그리고 지하철을 갈아타야 하는데. 어느 쪽으로 가야 지하철이 있는지. 지나가는 이에게 subway station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 그러나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한 사람이 subway는 저쪽이라고 가르쳐 줘 한참을 갔더니 그곳은 지하철이 아니라 지하도였다. 발음도 정확히 했다고 생각하였는데 알아듣는 사람이 없다니 이 친구들 선진국에서 고등교육 받은 사람들 맞아? 매우 의하 하였다. 그렇게 지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시비를 거는데 어느 노인네 한분이 지나가다  Train이 가는 subway를 이야기 하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답하자 영국에서는 subway는 사람이 가는 곳이고 지하철은 Underground 혹은 Tube 라고 하여야 알아듣는다고 하면서 친절히 지하철로 안내하여 주었다. 네미 학교에서 분명히 지하철은 subway라고 배웠는데....이런 무식한... 그놈의 지하철 노선은 왜 그렇게 복잡하던지. 어찌 되었건.....


나이트 브릿지 역에서 무작정 내렸다. 그러나 어디로 나가야 한국식당이 있는 길거리로 가는지 알 수 있었겠는가. 그냥 무작정 지상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매우 복잡한 곳이었다. 어찌해야 할지 한참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어디서 들리는 우리 말소리. 충무공께서 난중에 들으신 “일성호가”가 이런 것 이었을까. 그건 구름을 뚫고 하늘에서 들리는 옥황상제님의 목소리요 거친 파도를 뚫고 나오는 용왕님의 말씀이었다.

한걸음에 그 소리 나는 쪽으로 달려간즉 그곳에는 몇 명의 한국사람들이 이쑤시개를 입에물고 걸어오고 있었다. 외국에 나왔으면 길거리에서 이쑤시개는 좀 참으시지 하는 생각과 함께 아주 흥분된 음성으로 한국식당이 있는 곳을 물어본즉 이 사람들은 한국사람 만난 것이 그리 반갑지 않은 듯 그저 한번 고개를 들어 “어기요” 하고는 군중 속으로 살아져 갔다. “어기요?” 우리말에 그런 말도 있나? 네미 손가락으로 좀 자세히 “저기요” 하고 제대로 가르쳐 주면 손톱이 빠지나? 한달만에 만난 한국사람 이었는데. 참 야속하고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기요가 어딘지 알 수가 있나. 또 한참을 두리번 거리는데 경찰관 한명이 닥아오는 것이 보였다. 영국 경찰은 세계에서 가장 친절하다고 들은지라 (그때 영국 경찰은 시민에게 위화감을 준다고 육모방망이도 옷 속에 감추고 다녔다) 그 친구를 붙들고 한국식당을 물었다. 그 친구 왈, 골목길을 자세히 가르쳐 주며 식사 때만 되면 그 골목에서 동양사람이 많이 나온다고 그리로 가 보라고 한다.


무지하게 빠른 걸음으로 달려 들어간 골목길. 과연 그곳에는 선명한 태극무늬와 더불어 “아리랑” 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길거리에서 시간을 다 보내고 난 그때는 오후 2시 40분 정도가 되었을 때였다. 반갑게 식당문을 밀고 들어가자 한달여를 맡지 못하였던 우리 음식 냄새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식당 주인인 듯한 곱상한 중년의 여자 분이 “어서오세요. 그런데 지금 문을 닫아야 하는데 어쩌죠?”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밥도 먹기 전에 식당이 문을 닫다니. 런던은 점심때는 오후 3시에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어찌되었건 저녁때 지구가 망한다고 하여도 난 지금 김치찌개를 먹어야 한다.


남은 15분 동안 그간의 정황을 설명하고 통 사정을 하였더니 그 곱상한 아주머니 식당문을 닫고 Closed라는 팻말을 걸고 커텐을 치더니만 밥을 새로 하고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한꺼번에 만들고 김치와 깍두기와 전을 반찬으로 잘 차려 주셨다. 그리고는 허겁지겁 먹는 나를 바라보시며 혀를 끌끌 차시면서 “얼마나 굶었으면 저리도 급하게... 다음부터는 일찍 오세요. 법으로 3시면 문을 닫아야 하니까” 하신다. 천당에 가면 이런 기분일까?


그 후로 한달여 정도를 주말만 되면 일~찍 그곳에 가서 즐거운 식사를 하곤 하다가 돌아왔다.  지금도 식사 때만 되면 그때 그 무뚝뚝한 한국사람들과 그렇게 친절 하였던 주인 아주머니가 가끔 생각난다. 


한 3년 전쯤에 다시 런던에 들를 기회가 있어 반가운 마음에 달려간 그곳에는 아리랑은 없어지고 낯선 태국식당 간판이 걸려 있었다. 어찌나 서운 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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