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종’이란 학명(學名)을 얻을 정도로 독자적인 양식을 자랑하는 범종(사찰에서 의식을 행할 때 치는 종)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를 보여주는 범종제작 유구가 국내 처음으로 발굴됐다.
경기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봉업사터에서 3차 발굴을 진행하고 있는 경기도박물관(관장 이종선)은 최근 경내의 죽산리 5층석탑 북쪽 약 500m 지점에서 범종을 제작할 때 사용한 주형(鑄型)유구와 종에 사용할 청동을 녹이기 위해 썼던 용해(鎔解)유구를 발견했다. 범종 제작에 사용된 유구가 발견된 것은 처음 있는 일. 전통 범종의 주조 방법을 알 수 있는 유적으로 고고학적 의미가 적지 않다. 주형유구는 범종 틀을 놓았던 원형 띠를 반원형 네 귀가 달린 단단한 소토(燒土) 덩어리가 감싼 모습을 하고 있어 그 기능을 확실히 보여준다.
형틀 내부는 지름 77㎝이고, 종구(鐘口)는 두께 5㎝가량이며, 높이 2㎝ 안팎의 종 외형틀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아래에는 다시 너비 5㎝인 원형 띠가 돌아가면서 단을 형성하고 있었다.
주형유구 발견지점에서 남서쪽으로 4m가량 떨어져 확인된 용해유구는 동서 3.2m, 남북 2.6m 규모로, 청동을 녹이는 용로(鎔爐)를 자갈돌을 깐 뒤에 설치해 사용했음을 보여준다. 그 안쪽에서는 동서 3m, 남북 2.4m에 걸쳐 장타원형 목탄층이 넓게 확인됐다.
정영호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장(전 한국범종학회 회장)은 “나말여초의 범종 제작시설이 발견된 것은 국내는 물론 동아시아에서도 그 유례가 매우 드문 일”이라고 밝혔다. 현장을 다녀간 전통 범종 제작자인 원광식씨(무형문화재 ‘주철장’ 기능보유자)는 “봉업사지의 주형유구는 밀랍 형틀 위에 주조사(鑄造沙·범종과 거푸집 사이에 바르는 모래)를 여러 차례 바른 흔적인 확인됐다”며 “주조사에 사용된 모래와 진흙의 배합비가 전통 범종구조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라고 말했다.
통일신라 때 건립된 봉업사는 고려 태조 왕건의 진영을 모신 사찰로, 경내 면적이 3만여평에 달했으나 조선시대에 폐사됐다. 현재 경내에는 보물 435호인 5층 석탑을 비롯해 당간지주 등 많은 석조문화재들이 남아 있다.
봉업사에 대한 1, 2차 발굴은 1997년과 2000년에 이뤄졌으며 당시 ‘峻豊’(준풍·고려 광종의 연호)명 기와 등 500여점의 명문기와와 막새, 청자, 중국 자기들이 다량으로 출토된 바 있다.
안성 봉업사지에 대한 발굴조사(왼쪽) 결과 국내 최초로 범종 제작 관련 유적인 주형유구(오른쪽 위)와 용해유구(오른쪽 가운데) 이고 오른쪽 아래는 신석기시대 유물 〈조운찬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