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조선의 종

함평 보광사범종(咸平普光寺梵鐘)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72호)

korman 2007. 11. 17. 23:28

함평 보광사 범종


• 코드: cp0501b02701 


• 명칭 : 함평보광사범종 


• 지정 : 시도유형문화재 172호(전남) 


• 조성연대 : 조선 영조 43년(1767) 


• 제원 : 전체높이 121㎝, 종신 99㎝, 입지름 84.5㎝, 입두께 7㎝, 무게 300kg 


• 소재지 : 함평 보광사선원 


• 관리자 : 함평 보광사선원 


• 설명 


재질은 청동이며 주종장은 이해준, 혜웅, 현해이다. 용뉴는 쌍룡이 서로 등을 지고 있으며, 상대는 두 줄의 굵은 띠를 두르고 그 안에 8자의 원형범자를 새겼다. 그 아래에는 몸체에 비해 유난히 큰 사각형의 연곽이 있고 테두리는 빗살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연곽 안에는 돌출된 9개의 연뢰가 배치되어 있다. 연곽과 연곽 사이에는 두광을 갖춘 보살입상을 돋을새김 하였다. 


종신 아래 역시 굵은 두 줄의 도드라진 선을 두르고 그 사이에 명문을 새겨 놓았는데, 「☐☐☐☐☐丁亥三月 ☐☐寺 太☐銅五百斤…」이라 하여 대략 범종의 조성연대는 18세기 후반인 영조 43년(1767) 또는 1706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당좌와 하대는 없다. 18세기에 조성된 범종의 높이가 1m를 넘지 못하는 경향에 비추어 보면, 이 종은 그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보광사선원은 1942년 개인이 별장으로 지은 건물을 개조하여 현재 사찰로 운영하고 있다. 범종은 법당 왼쪽의 범종각에 보관되어 있는데, 면성지(綿城誌)의 기록에 의하면 원래는 무안군 해제면 원갑사, 일명 당산사(糖山寺)에 있던 종이었으나 폐사되자 함평군 해보면 용천사(龍泉寺)로 옮겨졌으나 한국전쟁 때 용천사의 화재로 1967년 이곳으로 옮겨졌다. 무게는 500근이며, 소리가 해맑아 우수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자료참조 : 문화재청, 직지성보박물관, 사찰 홈페이지>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2017년 11월 28일 현재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_id=CP_THE007&cp_code=cp0501&index_id=cp05010039&content_id=cp050100390001&search_left_menu=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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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2일 현재

 

함평 보광사범종 (咸平 普光寺梵鐘)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72호)

 

 

종 목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72호
명 칭 함평보광사범종 (咸平普光寺梵鐘)
분 류 유물 / 불교공예/ 의식법구/ 의식법구
수량/면적 1구
지정(등록)일 1990.02.24
소 재 지 전남 함평군  함평읍 함평리 288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보광사
관리자(관리단체) 보광사
상 세 문 의 전라남도 함평군 문화관광과 061-320-3225


 

범종은 법당 왼쪽의 범종각에 보관되어 있는 종이다.

원래는 무안 원갑사의 종이었으나 폐사되자, 함평의 용천사를 거쳐 한국 전쟁의 혼란을 피해 1967년 현 위치에 옮겨진 것이라 한다.

형태를 보면,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는 2마리의 용이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고, 용의 다리와 종을 연결하여 무게를 지탱하고 있다. 몸통 윗부분은 2줄의 띠를 두르고 그 안에 8자의 범자를 새겼다. 그 아래에는 사각형의 유곽이 있고, 안에 돌출된 9개의 유두가 배치되어 있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보살입상을 양각하였다. 몸통 아래쪽에는 넓은 두 줄의 도드라진 선을 두르고 그 사이에 글이 있어, 이 종이 영조 43년(1767)에 만든 것임을 말해준다.

머리부분에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용통이나,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와 아래쪽의 띠무늬을 생략하여 간략하게 하였다. 18세기에 조성되는 범종의 높이가 1m를 넘지 못하는 경향에 비추어 보면, 이 종은 그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출처 : 문화재청 사이트 2014년 2월 2일 현재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1,01720000,36

 

관련사이트 :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779553&cid=4469&categoryId=4469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26761&cid=1631&categoryId=1631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97168&cid=40942&categoryId=33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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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7일 현재

 

시도유형문화재 제172호(전남) 함평보광사범종(咸平普光寺梵鐘)

 

 

 

원래는 무안 원갑사의 종이었으나 폐사되자, 함평의 용천사를 거쳐 한국 전쟁의 혼란을 피해 1967년 현 위치에 옮겨진 것이라 한다.

형태를 보면,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는 2마리의 용이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고, 용의 다리와 종을 연결하여 무게를 지탱하고 있다. 몸통 윗부분은 2줄의 띠를 두르고 그 안에 8자의 범자를 새겼다. 그 아래에는 사각형의 유곽이 있고, 안에 돌출된 9개의 유두가 배치되어 있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보살입상을 양각하였다. 몸통 아래쪽에는 넓은 두 줄의 도드라진 선을 두르고 그 사이에 글이 있어, 이 종이 영조 43년(1767)에 만든 것임을 말해준다.

머리부분에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용통이나,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와 아래쪽의 띠무늬을 생략하여 간략하게 하였다. 18세기에 조성되는 범종의 높이가 1m를 넘지 못하는 경향에 비추어 보면, 이 종은 그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보광사는 1942년 개인이 별장으로 지은 건물을 개조하여 사찰로 운영하고 있다. 범종은 법당 좌측의 범종각에 보관되고 있는데, 원래는 무안 당산사(원갑사)의 종이었으나 폐찰되자 함평의 용천사를 거쳐 한국전쟁의 혼란을 피해 1967년 현 위치에 옮겨진 것이라 한다. 종의 형태를 보면 정상부에 용뉴와 상대, 종신, 유곽, 보살상 등을 갖추었으나 당좌와 하대를 생략하였다. 정상부의 용뉴를 보면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고 또한 용 다리를 묘사하여 종신과 접착시켜 그 무게를 지탱하게 하고 있다. 상대는 두 줄의 돌출대를 두르고 그 안에 8자의 범자를 새겼다. 종신 상단에는 전후좌우면에 두광을 갖춘 보살입상을 양각하였으며 그 사이의 4면에는 사각형의 유곽을 획정하고 그 안에 9개의 유두를 돌출시켰다. 몸체 하단에는 넓은 두 줄의 돌출대를 두르고 그 사이에 명문을 새겨 놓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정해삼월△△사 태△종오백근…」이라 하였다. 이 명문에 의하면 범종의 조성연대는 18세기 후반인 영조 43년(1767)으로 추정된다. 이 범종은 정상부에서 음통은 물론 당좌와 하대 등을 생략하는 간략화를 보이고, 그러나 18세기에 조성되는 범종의 높이가 1m를 넘지 못하는 경향에 비추어 보면 이 종은 그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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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29일 현재

 

전남 무안 원갑사 범종

(함평 보광사 소장)

 

원갑사 범종은 1990년 2월 24일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72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보광사에서 소장하고 있다. 범종은 보광사 법당 좌측의 범종각에 보관되어 있는데 원래는 무안군 원갑사(圓甲寺), 일명 당산사 또는 강산사(糠山寺)의 종이었으나 폐사찰되자 함평의 용천사로 옮겨진 것이다.
그뒤 6·25전쟁 때 용천사가 소실되자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67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고 한다. 《면성지》에 따르면 원갑사는 백양사의 말사로 무안군 해제면 강산에 있었다.


범종의 크기는 높이 2.1m, 윗둘레 2m, 밑둘레 2.65m, 직경 0.83m이다. 종의 형태는 정상부에 용뉴와 상대, 종신(鐘身), 유곽(乳廓), 보살상 등을 갖추었으나 당좌(撞座)와 하대를 생략하였다. 정상부의 용뉴는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으며 용의 다리를 종신과 접착시켜 그 무게를 지탱하게 하고 있다.

상대에는 두 줄의 돌출대를 두르고 그 안에 8자의 범자(梵字)를 새겼다. 종신 상단에는 전후좌우면에 두광(頭光)을 갖춘 보살입상을 양각하였으며 그 사이의 4면에는 사각형의 유곽을 획정하고 그 안에 9개의 유두를 돌출시켰다. 몸체 하단에는 넓은 두 줄의 돌출대를 두르고 그 사이에 ‘정해삼월’이라는 명문을 새겨 놓았다. 이 명문에 따르면 범종의 조성연대는 18세기 후반인 1767년(영조 43)으로 추정된다. 이 범종은 정상부에서 음통은 물론 당좌와 하대 등을 생략하는 간략화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18세기에 조성되는 범종의 높이가 1m를 넘지 못하는 경향에 비추어 보면 그 규모가 큰 편에 속하며 소리가 해맑아 우수한 범종으로 평가된다.

 


 

 

 

출처 : 원갑사 사이트 

 

 

2008년 5월 12일 현재

 

 

 

1988년 전통사찰 제60호로 지정된 보광사는 함평읍 함평리 289번지에 1924년 함평모씨 진택이 별당으로 활용하다가 용천사 신도들에 의해 1938년경 포교당으로 설립되었다. 1942년 모정숙주지에 인수되어 보광사 선원으로 명명되고 1962년 10월 9일 불교단체에 등록되어 있다.
보광사에는 범종이 유명한데 이 범종은 쌍용두통으로 중국계통의 주조형식이며 종의 윗부분에 문양이 8개, 중간 둘레에 큰 문양 4개가 새겨져 있고 소리가 해맑아 우수한 범종으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 : 함평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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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보광사범종 [咸平普光寺梵鍾]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 함평리 보광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동종. 1767년(영조 43) 제작. 총고 120.5cm, 종신고 98.5cm, 종구경 84cm.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72호.

범자대의 상대 밑으로 정방형의 유곽 4개를 배치하고 있고, 각 유곽 내에는 화좌(華座)에 자방(子房)이 돌출된 유두 9개를 갖고 있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두광을 갖춘 보살입상을 배치하였는데, 특히 하대인 구연대(口緣帶)와 당좌(幢座)를 생략한 것이 후대 범종 양식을 따르고 있는 특징이라고 본다.

이 명문에서 보이는 ‘정해3월’은 동종의 주조수법이나 형식·양식 등으로 보아 1707년(숙종 33) 보다는 1767년(영조 43)으로 주조연대를 보는 것이 무리 없고 타당한 것이라 본다.

제목 : 함평 보광사 법종  원본보기
설명 : 전남 함평군 함평읍 함평리 보광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동종. 1767년(영조 43) 제작. 총고 120.5cm.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72호.
출처 :

Copyright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엠파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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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 : 전남유형문화재 제172호

  • 지정연도: 1990년 2월 24일
  • 소재지: 전남 함평군 함평읍 함평리 288
  • 시 대: 조선시대
  • 크 기: 높이 2.1m, 윗둘레 2m, 밑둘레 2.65m, 직경 0.83m
  • 분 류: 공예류
1990년 2월 24일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72호로 지정되었다. 이 종은 면성지(綿城誌)의 기록에 의하면 원래 무안군 해제면 원갑사 일명 강산사(糠山寺)에 있던 종이라고 한다. 강산사가 없어지자 함평군 해보면 용천사(龍泉寺)로 옮겨졌으나 한국전쟁때 용천사가 불에 타게 되자 1960년대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종의 윗부분에 8개의 문양과 중간 둘레에 4개의 큰 문양이 새겨져있다. 무게는 300kg이며, 소리가 해맑아 우수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하단부에 두줄의 돌출띠를 두르고 그 사이에 명문을 새겨 놓았는데 「□□□□□丁亥三月 □□寺太□銅五百斤」이라 하여 대략 1706년 또는 1767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출처 :함평문호화관광
담당부서 : 문화관광과 관광진흥 (                061-320-37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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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7일 발췌

 

 

 

 

 

 

 

위    치 : 전남 함평군 함평읍 함평리 288 
홈페이지 :  www.hampyeong.jeonnam.kr (함평군청 홈페이지)
연 락 처 : 061-320-3249(함평군청 문화관광과)
지정번호 : 전남유형문화재 제172호 
지정연도 : 1990년 2월 24일 
관 리 자 : 보광사
시    대 : 조선시대 
크    기 : 높이 2.1m, 윗둘레 2m, 밑둘레 2.65m, 직경 0.83m 
개    요 : 1990년 2월 24일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71호로 지정되었다. 이 석불은 원래 해보면 해보
           리 산 61번지, 일명 탑동의 파평윤씨 종중 묘역 앞에 있었다가 현재의 위치인 함평군민회
           관 앞으로 옮겨온 것이다.
           석불은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갖춘 입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소발(素髮
           )의 머리에 육계가 솟아 있고 얼굴은 계란형으로 온화한 모습이다. 얼굴의 세부적인 부분
           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양 볼에 나타난 양감이나 턱 밑의 알맞은 피부감은 수준
           급이다.
         귀는 길게 늘어져 어깨 위에 멎었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다.법의는 우견편단(右肩偏
           袒)인데 어깨를 걸쳐 내려오는 옷주름은 다소 도식적이다.  수인(手印)은 두 팔을 구부려
           가슴 앞에서 역‘V’자형으로 모아졌는데 이러한 겉 모양은 화순군 운주사 석불군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이다.
           대좌는 자연석을 약간 다듬어 상면에 연꽃을 장식하였으며 전면에는  몸체와 연결되는 발
           등을 조각하여 신체 부분과 별석으로 처리하였다. 이 같은 기법은 통일신라시대 8∼9세기
           경 경주 남산 탑곡의 석불에서도 확인된다. 광배는 배모양의 거신광(擧身光)으로 두광(頭
           光)에는 두 줄의 원형 띠를 두르고 그 주위로는 불꽃무늬가 장식되었다.
           이 석불은 두광이나 화염문(火焰紋), 상호(相好)에서 보인 온화한 분위기, 양감과 입체감
           을 적절히  살려낸 각 부분의 조형미가 돋보인다.  그러나 하체의 도식적인 천의(天衣)의
           옷주름이나 거의 직선으로 뻗은 몸체의 모습 등에 고려적인 요소가 남아 있다. 불상을 만
           든 시기는 고려 초기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