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 범종(梵鍾)
1992년 6월 20일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8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십자형 종루 바닥에 놓여있는 송광사 범종은 전체높이 104.5㎝, 몸체높이 84.0㎝, 입지름 72.0㎝로, 종 몸체에 새겨진 기록에 의해 숙종 42년(康熙 55년, 1716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1977년 범종이 새로 조성되기 전까지 사용해 왔으나 이후 범종에 균열이 생겨, 1981년에 두 차례에 걸친 균열방지 작업 후 타종이 불가능해져 현재와 같은 상태로 보관되어 있다.
몸체 중앙부의 배부분에는 네모꼴 연곽(蓮廊)을 비롯하여 보살상과 위패(位牌) 모양이 장식되어 있다. 거의 수직을 이루는 몸체의 하단부에는 연곽 바로 아래에, 범종을 조성한 시기와 봉안사찰· 봉안장소· 조성에 참여했던 스님들과 사주자 등을 기록하고 있다.
범종에 새겨진 기록에 의하면 강희 55년인 숙종 42년(1716년)에 조성되어 광주 무등산 증심사 대웅전에 봉안되었는데, 어느 시기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송광사로 옮겨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한 영조 45년인 1769년에 범종을 중수했다는 기록도 추가로 새겨져 있다.
출처 : 송광사 사이트 2015년 2월 9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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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7일 현재
송광사동종 (松廣寺銅鐘)
종 목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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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송광사동종 (松廣寺銅鐘) |
분 류 | 유물 / 불교공예/ 의식법구/ 의식법구 |
수량/면적 | 1구 |
지정(등록)일 | 1992.06.20 |
소 재 지 |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569 |
시 대 | 조선시대 |
소유자(소유단체) | 송광사 |
관리자(관리단체) | 송광사 |
상 세 문 의 | 전라북도 완주군 문화관광과 063-240-4226 |
조선시대 만들어진 높이 107㎝, 입 지름 73㎝의 종이다.
종을 메다는 고리는 용이 여의주를 갖고 있는 형상이며, 옆으로 소리 울림을 도와 주는 음통이 있다. 종 윗부분에는 꽃무늬로 띠를 두르고, 아래 구슬 모양의 돌기가 한 줄 돌려 있다. 밑으로는 8개의 원을 양각하여 그 안에 범자를 새겨 넣었다.
몸통의 중심에는 머리 뒤에 둥근 광배를 두르고 보관을 쓴 보살 입상과 전패(殿牌)가 있고, 보살 입상 사이에는 사각의 유곽을 배치하였다. 유곽 안에는 9개의 꽃무늬로 된 유두가 있다. 종의 가장 아랫부분에는 덩굴무늬를 두르고 있다.
동종에 씌여있는 글을 통해 숙종 42년(1716) 광주 무등산 증심사에서 만들어졌으며, 그 뒤 영조 45년(1769)에 보수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출처 : 문화재청사이트 2014년 2월 7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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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10일 발췌
전북 완주군 소양면 송관사의 오래된 범종
1716년에 만들어진 범종은 전통 한국식을 따르고 있으며, 본래의 소속 사원이 적혀있고 조성연대가 분명하여 조선시대 범종연구와 前시대의 범종 연구에 빠져서는 안될 귀중한 자료이다.
원본 : blog.empas.com/city3000/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송광사 대웅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동종. 1716년(숙종 42) 제작. 총 높이 103.5cm, 종신 높이 83cm, 종 입지름 72.5cm.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8호.
종정(鐘頂)상의 용통(甬筒)에는 두 마리의 거북이 일렬로 정상을 향해 기어오르는 형태로 양주되어 있다. 용뉴의 단룡(單龍)은 한쪽 발에 여의주를 움켜쥐고 다른 한쪽 발은 종정을 딛고 있다.
종정의 천판(天板)은 편평한 편이고, 상대와 접하는 계선상(界線上)에는 연판형식의 입상문을 돌리고 있으며, 이 밑으로 연판을 도식변형한 복련대(覆蓮帶)를 돌리고 있다.
상대의 복련대 바로 밑으로 반원형 돌기문대를 돌려 장식하고 있으며, 일정한 간격 밑에 또 다시 한 줄의 융기된 횡대를 돌렸고, 또 그 밑으로 원형좌에 범자(梵字) 8자를 장식한 번잡한 문양대를 갖추고 있다.
상대와 떨어져 4개소에 배치한 유곽(乳廓)은 바깥 둘레에 잔잔한 연주문으로 장식하고 집선파상문과 같은 문양대로 장식하였는데, 유곽 안의 9개 유두 역시 화좌에 돌기된 형식이다.
또한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두광과 보관을 갖추고 합장한 보살입상 3구와 위패형 1개를 구비하고 있는데, 이 위패형에는 ‘主上三□壽萬歲(주상삼□수만세)’라는 자구가 양주되어 있다. 하대인 구연대 역시 연주문대와 연당초문으로 장식하고 있다.
동종의 종복 하단면에 양주된 명문이 있어 주조연대가 확실한 동종이다. 명문을 보면, ‘康熙五十五年丙申四月 全羅□道 光州無等山 □□寺大鐘……(강희55년병신4월 전라□도 광주무등산 □□사대종……)’으로 되어 있는데, 강희 55년 병신은 1716년(숙종 42)으로 무등산 모 사찰의 대종으로 주조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런 형태와 양식은 정읍의 내장사동종(內藏寺銅鐘,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49호)에서 보이듯 당시 유행하였던 양식의 동종이다.
출처 : 엠파스백과 2008년 4월 10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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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38호)
1716년에 만들어진 범종은 전통 한국식을 따르고 있으며, 본래의 소속 사원이 적혀있고 조성연대가 분명하여 조선시대 범종연구와 前시대의 범종연구에 빠져서는 안될 귀중한 자료이다.
범종은 현재 요사채 마루로 옮겨져 보관 중에 있는데, 조선시대 후기인 숙종 42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1980년까지는 줄곧 대웅전 앞쪽에 위치해 있는 십자모양 종각에 걸어두고 사용해 왔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후 종의 오른쪽 보살상 밑 종입부분으로부터 배 부분에 이르러 균열이 발생하여, 1981년의 두 차례에 걸친 균열방지작업을 끝으로 더 이상의 타종이 불가능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몸체에 새겨진 명문을 살펴보면 '강희오십오년 병신사월일 전라남도 광주 어등산 ○○사 대웅전' 이라는 내용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명문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이 종은 강희 55년인 숙종 42년(1716년)에 조성된 것으로, 처음부터 이곳 송광사에 봉안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 아니라 전라남도 광주 더응산의 절에 걸어두고 사용하고자 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종을 봉안했던 장소 또한 일반적으로 생각키 쉬운 종각이 아니고 '대웅전'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종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은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렇지만 과연 이 종이 어떠한 인연으로 인하여, 어느 시기에 이곳 송광사로 옮겨져 와서 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한편 이 명문구획의 바깥쪽 몸통에도 '대웅전 계유생제구' '건융삼십사년 기축구월일 중수문광득' 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후에 추가하여 새겨넣은 것으로, 채권가 크게 발원하고 돈을 대어 영조 45년인 1769년에 중수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이 내용만으로는 과연 무엇을 중수했다는 것인지에 대해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 왜냐하면 추각명이 본래 사찰에서 시행된 것인지 아니면 지금의 송광사에서 새긴 것인지가 불분명한 때문만이 아니라, 종 자체의 수리 흔적이 전혀 발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이 추각명이 종을 안치했던 대웅전이나 종각 등의 전각을 중수했다는 기록이라면 적어도 송광사에 대한 내용은 아닐런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1871∼2년에 간행된 [호남읍지]에 본래의 조성사찰로 여겨지는 여둔사가 등장하고 있음과 아울러, 송광사의 십자형 종각은 세조 12년인 1466년경에 창건된 뒤 임진왜란 중(선조 27년, 1594년)에 화재를 당하여 다 타버린 것을 철종 7년(1856년)에 중건했다고만 되어 있고 그 중간 기록이 제공되지 않아 더 이상은 헤아리기가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임진왜란 이후 영·정조대(1725 - 1800)에 이르러 불교중흥과 함께 전국 각지의 수많은 사찰을 중수 또는 재견했었다는 시대적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이 기록은 어쩌면 처음 종을 주조했던 사찰의 내용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007년 5월 23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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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송광사 대웅전(完州 松廣寺 大雄殿) 강희오십오년명(康熙五十五年銘) 범종(梵鍾) (2-93,3-69)
소재지(所在地) : 전라북도(全羅北道) 완주군(完州郡) 소양면(所陽面) 대흥리(大興里)
연 대(年 代) : 1716年(숙종(肅宗) 42年, 강희(康熙) 55年)
지정번호(指定番號) : 전라북도(全羅北道) 유형문화재(有形文化財) 제(第)138호(號)
실측치(實測値) : 총고(總高); 103.5cm, 용통고(甬筒高); 20.5cm, 상대폭(上帶幅); 10.5cm,
유곽장(乳廓 長); 17×20cm, 구경(口徑); 72.5cm, 종신고(鍾身高); 83cm, 용통경(甬筒徑); 5cm,
하대폭(下帶幅); 6.5cm 종구후(鍾口厚); 4cm, 용뉴고(龍鈕高); 19cm, 천판경(天板徑); 43cm,
유곽폭(乳廓幅); 2.5cm, 당좌경(撞座徑); cm
종정상(鍾頂上)의 용통(甬筒)에는 두 마리의 거북이 일례(一例)로 정상을 향해 기어오르
는 형태로 양각(陽刻)되어 있다. 용뉴(龍鈕)의 단룡(單龍)은 한쪽 발에 여의주를 장악(掌握)
하고 있고 다른 한쪽 발은 종정을 딛고 있는 형상이다.
종정의 천판(天板)은 평평한 편이고 상대와 접하는 계선상(界線上)에는 연판(蓮瓣) 형식
(形式)의 입상문(立狀紋)을 돌리고 있고 그 밑으로 연판(蓮瓣)을 도식(圖式) 변형(變形)시킨
복연대(覆蓮帶)로 돌리고 있다. 또한 상대(上帶)의 복연대(覆蓮帶) 바로 밑으로 반원형 돌기
문대(紋帶)를 돌려 장식하고 있으며, 일정 간격 밑에 또다시 1조의 융기횡대를 돌렸고 또
그밑으로 원형좌에 각자(刻字)된 범자(梵字) 8자(字)로 장식한 번잡한 문양대를 갖추고 있
다.
상대와 떨어져 4개소에 배치한 유곽은 외주연(外周緣)에 잔잔한 연주문으로 장식하고 집
선파상문(集線波狀紋)과 같은 문양대로 장식하였다. 유곽 내의 9유두 역시 화좌에 돌기된
형식이며, 또한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두광과 보관을 갖추고 합장한 보살입상 3구(軀)와 위
패형(位牌形) 1개(個)를 구비하고 있다. 위패형(位牌形)에는 「주상삼(主上三)□수만세(壽萬
歲)」라는 자구(字句)가 양주(陽鑄)되어 있고 하대(下帶) 역시 외연(外緣)을 연주문대로 처
리하고 연당초문(蓮唐草紋)으로 장식하였다.
종복(鍾腹) 하단면(下端面)에 투각한 한자명문(漢字銘文)과 양주(陽鑄)된 본래(本來)의 명
문(銘文)이 있어 주조연대가 확실한 범종(梵鍾)이다.
명문(銘文)을 보면 다음과 같다.
으로 되어 있으며
강희(康熙) 55年 병신(丙申)은 숙종(肅宗) 42年(1716)으로 무등산(無等山) 모사찰(某寺刹)의
동종으로 주종되었음을 알 수 있고 이런 형태와 양식은 내장산 동종에서도 보이고 있어 당
시의 유행하였던 양식의 하나로 보인다.
출처 : 1996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간 한국의 범종
'역사의 울림 속으로 > 조선의 종'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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