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조선의 종

전북 정읍 내장사 소장 조선동종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49호)

korman 2009. 9. 13. 17:41

전북 정읍 내장사 소장 조선동종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49호)

전북 정읍시 내장사 건륭33년명 범종(內藏寺 乾隆33年銘 梵鍾)

 


 

내장사(內藏寺) 건륭삼십삼년명(乾隆三十三年銘) 범종(梵鍾)(2-109, 3-80)


소재지(所在地) : 전라북도(全羅北道) 정읍시(井邑市) 내장동(內藏洞) 59
연 대(年 代) : 1768年(영조(英祖) 44年, 건륭(乾隆) 33年)
지정번호(指定番號)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49호
실측치(實測値) : 총고(總高); 72.5cm, 용통고(甬筒高); 15.5cm, 상대폭(上帶幅); 4cm,
유곽장(乳廓長); 13.5×13.5cm, 구경(口徑); 46.5cm, 종신고(鍾身高); 57cm,
용통경(甬筒徑); 3cm, 하대폭(下帶幅); 3.3cm 종구후(鍾口厚); 5cm,
용뉴고(龍鈕高); 13.5cm, 천판경(天板徑); 34cm, 유곽폭(乳廓幅); 2cm,
당좌경(撞座徑); cm


종정상(鍾頂上)의 용통(甬筒)은 고려(高麗) 후기(後期) 종(鍾)의 일반적(一般的) 양식(樣
式)을 갖추고 단용(單龍)의 용뉴(龍鈕)로 용(龍)의 입에는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있다. 종
정(鍾頂)의 비교적 수평(水平)을 이르고 있으나 용뉴(龍鈕)가 설치된 것은 일단(一段) 높아
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상대(上帶)와 종정(鍾頂)의 천판(天板)이 접(接)하는 부분에는 여의두문(如意頭紋)의 입상
문대(立狀文帶)를 돌렸으나 현재는 거의 마멸과 결손이 심해 일부분만이 잔존(殘存)하여 있
다. 상대(上帶)인 견대(肩帶)는 상하(上下) 2단(段)으로 구분하였다. 상단(上段)은 연당초문
(蓮唐草紋)을 주회(周廻)하였고, 하단(下段)은 화판(花瓣) 중앙(中央)에 작은 여의두문을 장
식하고 화변(花邊)을 고사리문양으로 장식한 복연판(覆蓮瓣)으로 돌리고 있다. 상대(上帶)와
유곽(乳廓)과의 사이에는 2조(條)의 세선(細線)으로 돌린 원공내에 범자(梵字)를 각출한 21
자(字)가 일정(一定)한 간격으로 배열(配列) 장식되어 있다.


4개소(個所)에 위치한 유곽(乳廓)은 거의 정방형(正方形)으로 되어 있으며 9유두(乳頭)는
화판유좌(花瓣乳座)에 자방(子房)이 돌출된 유두로 되어 있다.
그리고 유곽의 문양은 연당초문(蓮唐草紋)이며 하대(下帶)의 문양(紋樣)도 유곽 문양과 같
은 연당초문(蓮唐草紋)으로 조식(彫飾)되어 있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원형 두광과 보관
을 갖추고 합장한 보살입상 4구(軀)가 배치(配置)되어 있다.
하단(下段)에는 양주(陽鑄)된 명문이 있어 주성연대(鑄成年代)가 정확하다.
명문(銘文)을 보면

 

 

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부모(父母)를 위해 주성(鑄成)하여 보림사에 공양한 동종이다. 건륭(乾隆) 33年 무자(戊子)는 영조(英祖) 44年(1768)이며, 이와같은 형태의 범종류와 중국종(中國鍾)의 형식과 양식을 따르고 있는 여러 형태의 것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발행 (1996년 12월 12월 발행)

         소장(國立文化財硏究所長) 김 동 현(金 東 鉉) 저, 한국의 범종

http://portal.nrich.go.kr/kor/originalUsrView.do?menuIdx=502&info_idx=35&bunya_cd=422

2015년 9월 19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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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 내장사 소장 조선동종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49호)

내장사 건륭33년명 범종(內藏寺 乾隆33年銘 梵鍾)

조선동종소개조선동종

  • 조선영조 44년(1768년)에 제작된 높이 80cm 종신의 높이60cm 구경50cm의 소형 범종이다.
    용머리의 정교한 문양과 음향이 조선시대 작품으로 수작으로 꼽힌다. 명기에 영조 44년 시주 조한보가 그의 아버지 (조인구) 그의 어머니(양씨) 의 기복을 위하여 조성한 것이라 적혀있다. 전남 장흥군 보림사가 폐찰될 즈음하여 시왕상과 범종을 내장사로 옮겼다. 시왕상은 한국동란으로 소실되자 원적암에서 현 내장사로 옮겨온 것이다. 현재 관음전에 봉안되어 있다.

  • 출처 : 내장사 홈페이지 2014년 6월 29일 현재

  • http://www.naejangsa.org/02/02-2.htm?pageNum=1&subNu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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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추가 : 10/05/13

    내장사조선동종(內藏寺朝鮮銅鐘)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49호 (정읍시)

    명 칭

    내장사조선동종(內藏寺朝鮮銅鐘)

    분 류

    유물 / 불교공예/ 의식법구/ 의식법구

    수량/면적

    1구

    지정(등록)일

    1974.09.27

    소 재 지

    전북 정읍시  내장동 588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내장사

    관리자(관리단체)

    내장사

    상 세 문 의

    전라북도 정읍시 문화관광과 063-530-7790

     
    총 높이 80㎝, 몸체 길이 60㎝, 입 지름 50㎝로, 소형이나 명문이 확실한 조선 후기 범종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입 주변에는 한개의 덩굴무늬 띠를 둘렀으며, 어깨 부위에는 덩굴무늬 띠와 물결무늬 띠가 잇대어 배열되어 있다. 어깨 아래로는 2줄로 만든 작은 원 안에 범자를 도들새김 하였으며, 24개의 원을 배열하여 문양을 만들었다. 몸체 중앙에는 정사각형의 유곽을 4개 두고 안에는 9개의 유두를 도드라지게 새겼다. 유곽을 만든 띠는 덩굴무늬로 채웠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보살상을 양각하였다. 몸체의 맨 윗부분에는 꽃을 세워 장식한 듯한 문양이 있다.

    이 동종은 내장사가 중건되자 전남 보림사에서 옮겨 왔는데, 일제시대 후기에 원적암에 은닉하였고, 한국전쟁 때 정읍시내 포교당에 피난시켜 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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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지정문화재

     

     

    지정번호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9호

    문화재명 :

    내장사 소장 조선동종

    지 정 일 :

    1974년 09월 27일

    시     대 :

    조선시대

    소 재 지 :

    정읍시 내장동 590

    상 세 설 명

    전체의 높이는 80cm이다.
    종신(鐘身)의 높이는 60cm이고 구경(口徑: 안지름)은 50cm의 작은 종이나 명문(銘文: 새긴 글)이 확실한 조선조 후기(朝鮮朝 後期)의 범종(梵鐘: 절에서 사람을 모이게 하거나 시각을 알리기 위하여 치는 큰 종)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구연(口緣: 종의 아랫쪽)은 한 줄의 굵은 돌권대(突圈帶: 오똑하게 돌라져 나온 띠)가 있고, 견대(肩帶: 어깨쪽)는 둘로 구분되어 상권(上卷)은 당초문(唐草紋: 여러 가지의 덩굴풀 이 비꼬여 뻗어 나가는 모양의 무늬)을, 하권(下卷)은상연융대(上緣隆帶)를 따라 여의두문 (如意頭紋)을 배열하였다.

    견대(肩帶) 밑에는 24개의 2중 소원권(小圓圈)을 둘리고, 그 안에는 범자(梵字: 인도의 옛 글자)를 양주(陽鑄: 종에 도드라지게 나타내는 글자)하였다.
    유부(遊部)는 당초문대내(唐草紋帶內)에 아홉 개의 젖(乳)이 세단(三段) 삼열(三列)로 돌주(突鑄)되었는데 각각의 젖(乳)은 연화문유좌(蓮花門乳座: 연꽃을 도안하여 만든 무늬)를 받치고 있다.
    당좌(撞座)는 화문(花紋: 꽃 무늬)을 돌린 원형(圓形)으로 보살상(菩薩像) 바로 아래에 두 개가 있고 그 남아 있는 곳에 종기(鐘記)가 양주(陽鑄)되어 있다.
    종(鐘)에 기록되어 있는 바로는 "건융 삼십삼년 무자 시월(乾隆 三十三年 戊子 十月) 시주 조한보(施主 趙漢寶), 전남장흥군보림사주성 윤광형(全南長興郡寶林寺鑄成 尹光衡)" 운운 하였다. 이는 조한보(趙漢寶)가 그의 아버지 조인구(趙仁九), 어머니 양씨(梁氏)의 복 (福)을 빌기 위하여 종(鐘)을 만들었다는 내력이 적혀 있다. 이때가 영조(英祖) 44년으로 1768년이다.

    내장사(內藏寺)가 고쳐 지어지자 전남(全南) 보림사(寶林寺)에서 옮겨 왔는데 일본 제국주의(日本帝國主義) 말엽에는 놋쇠의 공출(供出)을 피하기 위하여 원적암(圓寂庵)에 감춰져 있었고, 한국동란(韓國動亂) 때에는 정읍시내 포교당(布敎堂)에 피신시켜서 보전하였다.
    한편 2000년 4월 정읍시는 '내장사 이조 동종'이라는 명칭에 관해 '이조'라는 말이 일제 치하에서 조선조를 씨족사회로 격하하기 위해 붙인말이며 당시 이 동종의 주조처가 장흥 보림사라는 점에서 '내장사 소장 조선동종'으로 문화재명을 변경추진하였다.

     

    출처 : 정읍시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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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자료 출처일 2008년 8월 8일 현재

     

    내장사이조동종 [內藏寺李朝銅鐘]

     

    * 주 : 2000년 4월 정읍시는 '내장사 이조 동종'이라는 명칭에 관해 '이조'라는 말이 일제 치하에서 조선조를 씨족사회로 격하하기 위해 붙인말이며 당시 이 동종의 주조처가 장흥 보림사라는 점에서 '내장사 소장 조선동종'으로 문화재명을 변경추진하였다. 현재는 내장사 소장 조선동종으로 불리운다.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동 내장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동종. 총 높이 72.5cm, 종신높이 7cm, 종지름 46.5cm. 1768년(영조 44) 제작.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9호.

    종정(鐘頂 : 동종의 정상)의 천판(天板)은 비교적 수평을 이르고 있으나 용뉴가 설치된 곳은 한 단계 높아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견대(肩帶)와 천판이 접하는 부분에는 여의두문으로 장식된 입상대(立狀帶)를 돌렸으나 마멸과 결손이 심하여 현재는 일부만이 남아 있다.

    상대인 견대는 상하 2단으로 구분하였는데, 상단은 연당초문으로 돌려 장식하였으며, 하단은 꽃잎 중앙에 작은 여의두문을 장식하고 꽃잎변을 고사리 문양으로 장식한 복련판으로 돌리고 있다. 상대와 유곽과의 사이에는 두 줄의 가는 선으로 돌린 원공 안에 범자(梵字) 21자를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장식하고 있다.

    4개소에 위치한 유곽(乳廓)은 거의 정방형으로 되어 있으며 9개의 유두는 꽃잎유좌에 자방이 돌출된 유두로 되어 있다. 그리고 유곽의 문양은 연당초문이며 하대인 구연대의 문양도 유곽문양과 같은 연당초문으로 장식되어 있다.

    또한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원형의 두광과 보관을 갖추고 합장한 보살입상 4구가 배치되어 있으며 하단에는 양주(陽鑄)된 명문이 있어 주성 연대와 사찰명을 밝히고 있다.

    명문에는 ‘乾隆三十三年 戊子十月 日長興寶林寺明正庵中鐘鑄 成尹光衡 大禪師光學 化主德周 別座來應 施主秩 大施主尹光衡 趙漢寶爲化父母 趙仁九 梁氏兩主 林奉□ 妻安氏(건륭33년 무자10월 일장흥보림사명정암중종주 성윤광형 대선사광학 화주덕주 별좌내응 시주질 대시주윤광형 조한보위화부모 조인구 양씨양주 임봉□ 처안씨)’로 기록되어 있는데, 부모를 위해 주성하여 장흥 보림사 명정암에 공양한 동종이며, 건륭 33년 무자는 영조 44년(1768)으로 조선 후기 동종의 양식을 갖고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엠파스백과 (현 네이트백과) 2008년 8월 8일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