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우리와 my의 사회

korman 2017. 1. 15. 22:49

 

 

 

 

우리와 my의 사회

 

 

벌써 35년이 훌쩍 지난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많은 경험을 한 지금도 선뜻 적응되지 않는 것이 있다. 사회 초년생을 조금 벗어났던 시절 미국인을 만나야 하는 일이 나에게 주어졌다. 회사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늘 사용하는‘우리회사'라는 표현을 썼다. 영어로 직역하면 'our company'가 된다. 회사라는 집단에 속해 있으며 내 회사도 아니고 임명직 대표도 아니니 우리식 표현으로는 언제나 그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대는 줄곧 'my company'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직역하면 '내 회사'가 된다. 명함에는 분명 그 회사 직원 직함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가 소유한 회사도 아니었건만 그에게서 대화 내내 나처럼 our라는 표현은 나오지 않았다. 그와의 30여분정도 대화에서 난 '우리(의)’그는‘my', 그렇게 같으면서도 다른 표현으로 대화가 계속되고 끝이 났다. 다른 경험 없이도 그것이 곧 문화의 차이라는 것을 알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다른 서양 사람과의 대화에서 그들의 표현을 받아들여 나도 My company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사주나 사장만이 my company라는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우리식 개념에 늘 지배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지배는 나 자신의 사업을 경험한 지금에도 없애기 힘든 문화적 차이가 되었다.

 

 

마누라까지도 공동의 소유격을 사용하여 '우리(의)마누라'라고 하는, 또 남편도 남과 공유하는‘우리남편'이라 부르는 민족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고대 모계사회에서 남편을 여럿 거느린 여인이 있어 그녀의 남편들이 모이면 '우리마누라'라는 표현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또 예전 양반사회에서는 첩실을 여럿 거느린 사람도 있었고 아내들도 그걸 인정하였으니 그 아내들에게는 '우리남편'이 되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마누라와 남편까지 공동의 소유격을 사용하는 것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우리식 표현이다. 나나 내 친구들도 스스럼없이 우리마누라, 내 마누라가 남들과 있을 때도 우리남편 이라 자연스럽게 칭하니 우리사회에서야 어석함 없이 받아들이지만 우리 회사를 our company라 말하듯 our wife, our husband라 칭하면 서양인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자식들의 경우야 부부가 두 명이고 같이 만들었으니 그들이나 우리나 '우리애들'이라 하여도 전혀 이상한 것은 없지만 자식의 경우에도 그들은 자리를 구분하였다. 즉, 부모 중 남편이나 아내나 어느 한 쪽만 만났을 때는 my라는 표현을 하였지만 부부가 같이 이야기 하고 있을 때는 우리애들이라는 우리식 표현도 썼다.

 

 

서양인들은 my라는 개인적 단어를 많이 쓰는데 비하여 우리는 유독 우리라는 집단적 단어를 많이 쓴다. 우리나라로부터 시작하여 서양인들이 my로 표현하는 많은 것들을 극히 개인적 소유물을 제외하고는 모두의 공동 소유인 '우리'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유대관계를 많이 생각하는 더불어 의식을 가지고 있고 서양에서는 자신이 속한 나라까지도 my country로 표현하는 이유로 인하여 극히 개인주의적인 모양새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my라는 표현이 강조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모든 공공시설도 개인적 소유개념에서 다루고 사용하므로 우리의 그것 보다는 수명이 길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어찌되었건 우리(의)나 my나 모두가 소유격이니 어디에 속하던 무엇을 소유하던, 비록 사람이 아니고 물건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배려하고 아끼고 사랑하여야 한다는 기본 개념이 바닥에 깔려있어야 한다는 것은 나만의 예외적 생각은 아닐 것이다. 모두가 공존하여야 하는 가족이나 사회 및 국가 구성원으로써의 개념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렇게 입만 열면 my my my 하는 미국인에게서 가족 이야기가 아니라도 우리라는 표현을 들은 때가 있었다. 아마 911때였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그 사건이 나던 해 초겨울 뉴욕에서 만난 분은 911을 이야기하면서 내나라 대신에 우리나라라는 집단적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때 그의 표정이 많이 굳어있다는 생각은 하였지만 그가 왜 버릇처럼 사용하는 my 대신에 우리(we, our)라는 단어를 사용하는지 눈치 채지는 못하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무언가 공동의식이 필요할 때 그들은 'my'대신에 '우리'라는 단어를 선택함으로써 결의를 다지고자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국가나 사회의 단결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나라가 매우 어지럽다. my냐 our냐 하는 이런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갑자기 머리에 떠오른 이유는 늘 입만 열면 '우리'를 외치는 우리나라, 우리국민들이 진정한 우리가 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늘 my를 우선으로 외치는 저들보다도 공동의식이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깝기 때문이다.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의 책임도 크겠지만 늘 곁에 두고 사용하여서 그런지 우리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를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개인이기주의나 집단이기주의 및 극단주의로 변화해 가는 우리사회가 안타깝기 때문이다. 의무는 없고 권력과 권리만이 난무하는 대한민국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기 때문이다. 

 

 

이 어지러움을 극복하고 국가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우리나라와 우리사회에 붙어있는 진정한 의미의 '우리'가 무엇인지 되짚어 깨닫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래본다. 우리가 내포하는 것은 소유라는 의미도 있지만 공동체라는 의미도 있다. 즉, 울타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울타리는 무엇인가? 대한민국이다. 최소한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일에서 만이라도 당리당약이나 사리사욕을 떠나 한목소리로 '우리'의 의미가 강조되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것, 이것은 권리나 권력이 아니라 의무이기 때문이다.

 

 

2017년 1월 16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