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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4/25 대만여행 3

korman 2025. 5. 7. 13:53

4/22-4/25 대만여행 3

호텔방의 전화가 울렸다. 손목시계는 알람이 없으므로 혹시나 해서 호텔 리셉션에 모닝콜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여도 난 이미 5시가 못되어 깨어 있었다. 1시간 시차 때문에 뇌에 입력된, 집에서 매일 일어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비행모드를 해제하지 않았던 핸드폰을 열자 어젯밤 10시로 표기된 시간에 외교부에서 보낸 문자가 들어왔다. 해외에 나가면 외교부에서 늘 해외여행의 참고사항과 주의사항 등의 문자를 보내는 것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읽어보는데 몇 건의 문자들 중간에 ‘대만 자이시 인근에 진도 6.4의 지진발생, 낙하물 및 여진에 주의’라는 정보가 들어있었다. 언제 지진이 발생되었다는 표기는 없었으나 22일에 수신되었으니 문자 당일에 발생된 것으로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공항에서 호텔로 이동하는 내내 가이드는 자신의 경험담을 섞어 지진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 대만에서 크고 작은 지진이 통상 있다는 것은 일행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젯밤에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고 호텔도 모두 조용하였으므로 우리가 묵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닌가 하여 지도를 찾아보았다. 중남부에 가까운 곳이었다. 가이드에게서도 연락이 없었고 창밖 거리에도 특별한 움직임이 없어 잘못된 소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집사람의 전화기에도 같은 문자가 들어왔을 테지만 전화기는 꺼서 가방에 넣어 놓았으므로 불안해 할 것 같아 문자이야기는 접어두었다. 

우리가 묵은 건물은 식당이 있는 건물과 떨어져 있어 아침을 먹기 위해서는 동네 좁은 길을 건너 주차장을 통과해야 했다. 창밖을 보니 굵은 빗줄기가 보였다. 오늘 하루가 빗속에서 심상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한국인 여행객들이 이 호텔에 묵고 있는지 주차장에는 국내 대표여행사들의 푯말을 건 버스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이 호텔의 조식에 대한 선행자들의 긍정적인 후기가 별로 없어 나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주된 메뉴 대부분이 대만식으로 조리된 것들이라 아침을 부담스럽게 하였다. 그러나 만국공용의 스크램블, 토스트, 잼, 버터, 커피 또한 준비되어 있어 선택의 반가움은 있었고 집사람의 경우 나보다는 약간의 대만식 향내에 잘 적응하여 다행이었다. 식탁에서 우리는 사용하지 않는 카드 한 장을 발견하였다. 한 면은 분홍색, 다른 면은 연두색으로 된 카드였다. 내용을 읽어보니 식사중일 때는 분홍색 면으로 놓고 식사 후엔 연두색으로 놓으라는 안내였다. 뷔페식으로 되어 있으니 자리를 뜬 손님들의 상황을 판단하는 방법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한자표기가 우리와는 달라 재미있었다. 식사로 테이블을 사용 중일 때는 用餐中, 식사 후 자리를 뜰 때는 用餐完畢. 우리라면 어떤 한자표기를 사용할까 궁금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 카드에 신경 쓰는 사람들은 없는 듯 하였고 테이블을 정리하는 직원들도 카드 색에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 팀을 포함하여 식사중인 사람들 대부분은 한국인이었고 나 말고도 모두 외교부 문자를 받았을 텐데 나만 궁금한 것인지, 외지에 나오면 모두 핸드폰은 꺼 놓는지, 아니면 나와 같은 조심스러운 생각인지 버스에 오르면서도 아무도, 가이드까지도, 지진에 대한 문자 이야기는 없었다. 일행에 괜한 불안을 줄까싶어 나도 침묵하였다. 버스가 달리는 내내 비는 계속 내렸다.

가이드가 첫 번째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리고 있을 때 창문에 부딪는 빗방울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하차 시에는 짙은 구름사이로 간간히 햇빛도 내리고 있었다. 휴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예류지질공원’이라는 곳에는 비대신 빗방울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수백만 년 동안의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자연이 만들어놓은 조각품들이 즐비하게 세워진 바닷가 넓은 바위평원의 바닥은 사람들의 발길에 쓸리고 다듬어져 흡사 왁스를 칠해 놓은 듯 빛나고 있었다. 여왕머리바위, 공주바위, 하트바위, 슬리퍼바위 등등 유수한 작명가들이 요리조리 살펴보며 지었음직한 이름들이 바위 바위마다 그럴싸하게 붙여있고 가이드를 동반한 모든 여행팀은 대표바위인 여왕머리 앞에서 증명사진촬영을 위하여 차례가 올 때까지 질서 있게 대기해야 했다. 모든 바위들을 여왕이 다스리는 듯하였다. 그 여왕머리는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를 떠올리게도 하였고 60년대인가 70년대인가 한 때 유행하던 여인들의 뒷머리를 둘둘 말아 올린 헤어스타일을 연상시키기도 하였다. 가수 ‘박재란머리’라 하였던가.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여왕의 목이 나날이 가늘어지고 있으며 작년보다 올해 더 가늘어진 것처럼 보인다고 하였다. 그러다 언젠가 갑자기 바람에 날려 사람들의 시야를 벗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에 오르자 또 비가 내렸다. 여왕이 우리가 자신을 알현하는 시간동안만 비가 내리지 않도록 하늘과 내통을 한 모양이었다. 나는 여왕에게 오늘 하루 비를 잘 피하게 해 달라고 소청을 하였다.

 

TV에 하도 많이 소개되어 눈에도 익숙한 지우펀의 골목에 들어섰다. 이곳에서 여러 골목을 오락가락 하다가 일행 중 길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가이드는 돌아오는 길에 기억하여야 할 골목의 체크포인트를 강조하고 있었다. 사람에 치여 나도 집사람을 잃을 것 같은 염려에 골목 내내 잡은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취두부 냄새가 점령한 골목을 입으로 숨 쉬며 빠져나와 아름다운 오카리나의 선율이 가득한 상점에서 손주들을 위한 작은 오카리나 세 개를 사들고 다시 차에 올랐다. 신기하게도 지우펀 골목을 누비는 동안 하늘은 조용하였다. 여왕의 배려였나?

천등을 날리러 갔다. 천등은 열기구와 같은 원리로 하늘에 오른다. 열기구는 사람이 타고 오르지만 천등은 사람들의 소원을 담고 오른다. 내 소원이 하늘에 잘 닿으라고 비는 내리지 않았다. 대신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올리는 천등이 구름 낀 회색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어디가나 사람으로 인산인해였다. 우리 일행에게는 네 명당 천등 한 개씩이 주어졌다. 따라서 각자 네 면의 한 면씩에 개인의 소원을 적어 함께 날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부부와 함께할 좀 젊은 부부가 붓을 들다말고 갑자기 자신들은 등을 올리지 않겠다고 하였다. 이유를 묻자 자신들이 믿는 종교 때문이라 하였다. 소원을 내가 대신 적어주겠다고 하여도 그들은 거절하였다. 나와 집사람은 천등의 네 면에 모두 우리의 소원만 적으니 좋긴 하였지만 종교적인 이유로 천등을 올리지 않겠다는 그 부부의 생각은 이해가 어려웠다. 하늘로 잘 올라가는 천등을 바라보며 내가 쓴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면서 한편 다른 궁금증이 일었다. 천등은 일정한 높이 이상 오르지 못한다. 다행이 야산을 넘어 시야에서 살아지는 것도 많았지만 어떤 것은 산 중턱에 떨어지고 잘못 다룬 천등은 오르지도 못하고 타버리는 것도 있었다. 매일 수천 개의 천등이 오를 것 같은데 그게 떨어지는 곳의 환경은 어찌되는 것인지가 궁금증이다. 천등골목을 빠져나오다 마신 오렌지주스가 가끔 생각날 것 같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엔 다시 비가 내렸다.

2025년 4월 24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Rw9sfHxh7ic 링크

Gabriel's Oboe from 'Mission'🎬가브리엘 오보에(Nella Fant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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