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산에서

korman 2006. 9. 24. 00:43

 

어쩌다 그 멋지던 외관을 망가뜨린 볼똑 튀어나온 배를 좀 줄여볼까 하고

마누리 혈압과 당뇨에 좋다고 하여

학교때, 연애할때 열심히 다니다 온갓 핑계로 그만두었던 산을

다시 다녀보고자 올봄부터 인천 근교의 야산부터 오르기 시작 하였다.

그러다가 장마라는 핑계로, 한여름 너무 더우니 조심해야 한다는 핑계로 

또 그만 두었다가 오늘 천고마비의 토요일을 맞이하여

계양산을 올랐다.

 

계양산은 인천에서는 강화도를 가지 않는 한 가장 높은 산으로 (495m)

무리하지 않고 우리집에서 4시간 정도면 충분히 왕복할 수 있는 산이다.

하늘이 참으로 좋아 그야말로 청명한 "Skyblue" 였다. 

나는 가을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가을하늘 만큼은 좋아한다.

그 청명하게 짙은 파란색 하늘을...

그래서 별명도 "Skyblue"로 지었다. 가을하늘이라 지으면 가을에만 써야 하니까. 

 

아직 단풍은 들지 않았지만 한여름 우거졌던 나뭇잎들이 시들어 가고

많은 잎사귀들이 흡사 병에걸린 모양으로 갈색이 되어

땅으로 내려 앉는다.

내가 가을을 싫어하는 이유중의 하나다.

 

아직 한낮의 따거운 햇살을 피하여

잎사귀가 듬성듬성 떨어져 나간 나무가지 밑 그늘로 잠시 앉아본다.

잎이 떨어져 나간 사이사이로 구름을 뚫고 내려오는 것처럼

햇살이 비추인다.

 

바람이 인다.

잎이 떨어진 가지 사이로 부는 바람소리는

한여름 우거진 나무잎을 뚫고 부는 바람과는 사뭇 다르다.

아직 푸른 잎이 많이 남아 있는데도 그 바람 소리는

마른잎이 땅에 굴러가는 가벼운 소리가 난다.

여름의 바람소리는 장중한 첼로소리 같았는데.

잎이 다 떨어진 겨울의 그것은

어릴때 맞았던 종아리 회초리 소리 일까!

 

오르는 중간에 유치원에서 소풍나온 아이들을 만났다. 영어반이라나..

조금 높은곳에 보물찾기놀이를 마련하고 아이들을 오르게 하였다.

한 녀석이 오르면서 하는 말

"다 좋은데 힘이 든다는것이 문제란 말이야" 한다.

그녀석은 오늘 인생을 사는데 첫번째 힘든 고비를 맞았는지 모른다. 

조금 있으면 남의나라 말을 배우는것이 얼마나 힘든지

두번째 고비를 넘어가야 할른지 모르지만.

이제 그 꼬마 친구는 오늘 산을 오르며 인생을 배우는구나 생각하니

그냥 입가에 웃음이 지어진다.

 

한줄 김밥과 냉커피로 산중 파티를 즐기고

집으로 돌아와

잊고 있었던 하늘색 베레모를 찾았다.

나의 산행역사를 모두 기억하는 그 베레모를

다음 토요일을 위하여.....

 

문득 도봉산 포대능선에서 낭떨어지로 미끄러지는 나에게

자신의 큰 히프를 나의 워커 신은 발목에 제공하여

추락을 막아 주었던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아직 살아 계시는지.

'이야기 흐름속으로 > 내가 쓰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Starbucks 와 Star Fucks  (0) 2006.09.27
친구에게  (0) 2006.09.25
생각의 차이란  (0) 2006.09.22
우리는 어디에 2  (0) 2006.09.21
도라지 위스키  (0) 2006.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