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추위는 뇌를 수축시킨다.

korman 2018. 2. 3. 20:53




추위는 뇌를 수축시킨다.


지난 1월은 무던히도 추웠다. 하루 반짝 봄날이 오는 듯하더니 2월의 첫 주말이 다시 깊은 얼음 밑으로 숨었다. 내일이 봄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는데 다시 강추위라니 삼한사온은 어디를 갔는지 무색하기만 하다. 요즈음은 삼한사한이 맞는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무던하다’라는 말은 원래 좋은 의미로 쓰인다. 그저 성격이 수수해서 상대하기 편한 사람을 가리켜 ‘무던한 사람’이라고 불러왔다. 그런데, 요즈음은 듣기 어렵지만 그리고 젊은 세대들은 전혀 사용하는 것 같지 않지만, 좀 오래된 세대들 중에서는 어려웠던 날씨를 두고도 ‘무던히도 더웠다’ 혹은 ‘무던히도 추웠다’라는 표현을 하기도 하였다. 날씨가 하도 까칠하니 사람처럼 좀 달래서 수더분해 지기 바라면서 그런 표현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표현대로 날씨가 무던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요새 같은 추위엔 누구에게나 있는 바람일 것이다.


바다에 유빙이 떠다녀 뱃길이 막힌 지역이 있다고 한다. 눈이 오거나 길이 얼면 소금을 가지고 녹이는데 그 소금을 품은 바다가 언다는 건 보통 추운 게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은 ‘요새 추위는 추위도 아니다’라는 말들을 한다. 그 때가 언제였는지 세월의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정도 였던 때로 생각된다. 인천앞 바다가 모두 얼어 섬을 연결하는 연락선들이 연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승객들은 부두에서 한참 떨어진 바다에서 연결된 배다리(배와 배를 연결하여 만든 다리)를 타고 뭍으로 들어왔던 기억이 난다. 


한강물도 다 얼었다고 한다. 언제부터 한강물 어는 게 힘들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내 어릴적 한강에는 겨울마다 커다란 야외 스케이트장이 생기곤 하였다. 물론 그 당시의 한강물은 지금보다 많이 깨끗하였으니 스케이트를 탈 수 있을 만큼 강을 얼리는 빙점이 지금의 그것보다는 높았었을 수도 있다. 지금은 모두 복개되어 찾아볼 수 없지만 동네를 흐르는 개천도 썰매장 아니면 스케이트장으로 변했기 때문에 도시에서도 아이들이 추위를 견디며 겨울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자연친화적이었다 할 수 있겠다. 


지금도 TV를 보면 생활환경 따라 갖가지 방법으로 추위를 이기기 위하여 애쓰는 사람들을 보면 안쓰럽다. 예전에야 대부분의 집에서 머리맡에 놔둔 사발의 물이 아침에 일어나면 얼곤 하였지만 지금도 어렵게 사시는 분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그렇다고 하니 세월이 그리 흘렀어도, 그리고 아무리 온난화가 왔다고 하더라도 아직 우리의 겨울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 분들도 어렸을 적에는 친환경적인 겨울을 보내신 분들이 많았을 텐데.


추위의 차이에 대한 느낌은 예전과 지금의 생활환경에 대한 차이 일수도 있다. 오염되지 않았던 물과 공기, 보온성 없었던 주거생활과 의류 등등, 지금과 같은 온도였다 하더라도 당시에는 추위를 더 느꼈었을 수도 있다. 보편적으로 지금은 자가용이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어디를 간다 하더라도 추위에 노출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겨울을 즐기는 노출이 아니라면 대중교통의 보온성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학교에 가려고 아침에 버스를 타면 나무판자가 뜯겨진 버스의 바닥으로 칼바람이 들어오고 그 바닥 밑으로 지나가는 아스팔트길이 보이던 예전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맑은 하늘과 창을 뚫고 방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볕이 어우러진 창밖의 거리가 봄날처럼 느껴지는 하루였다. 밖의 모습만을 살피며 시장을 다녀오겠다고 문을 나선 집사람이 금방 들어왔다. 핸드폰에 나타난 내가 사는 동네 기온은 바람이 불며 영하 7도였다. 난 그걸 알면서도 집사람을 말리지 않았다. 집사람은 수술 후 특히 추위를 많이 타게 되었다. 이 추위에 현관을 나서서 어디까지 갔었냐고 묻고 싶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독감이 유행이라는데 마누라 독감 걸리면 안 된다는 걸 순간적으로 잊고 있었다. 추위가 뇌를 수축시키는 모양이다.


2018년 2월 3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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