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추억인가 기억인가

korman 2021. 3. 9. 14:44

인천 해돋이공원 호수의 아침 봄 물안개

추억인가 기억인가

 

어느 날 TV를 보다 ‘저런 게 과연 추억일까 아니면 추억으로 포장된 기억일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기억이나 추억이나 사전적 의미는 별로 다른 것 같지 않다. 영어사전을 찾아봐도 모두 같은 단어로 번역되어 있다. 그렇다고 하여도 두 단어는 인생이나 문학을 논하지 않더라도 나에게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 느낌에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것 같다.

 

가끔 현재 성공을 하였거나 자신의 현 상태를 누구에게도 떳떳이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TV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자신이 과거 걸어온 길을 회상하며 불행했던 시절을 ‘추억’이라고 말 하는 경우가 있다. ‘아린 추억’이라고. 하지만 아직 그 불행했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지난 시절을 추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저 현재로 이어진 아픈 기억으로만 남아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채널을 돌리다가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사람을 찾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정해놓고 방영시간에 맞춰 보는 것은 아니지만 감사와 존경과 그리운 마음을 전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마주치면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자식을 앞세우고 그 앞세운 자식을 싸늘한 물밑에서 찾아준 고마운 분의 영향을 받아 다른 지역에서 그 분과 같은 봉사활동으로 아픈 마음을 스스로 치유하고 있는 분을 찾는 내용이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무리 예전에 그런 인연으로 서로 만났다 하더라도, 또 그런 활동을 직접 만나서 격려하고 싶었다 하더라도, 뼈저리게 아픈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을 그 분을 찾아 그 아픈 기억을 일깨워 줄 필요는 없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또 다른 날에는 예능프로그램 같은 것에서 자신들이 추억하고 있는, 오래전에 비정상적으로 이 세상을 떠난. 동료 연예인의 유족을 만나는 장면을 보았다. 근간의 사건도 아니고 현재 이슈가 될 만한 연관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아니며 보고 있자니 프로그램에 꼭 그 아팠던 일을 다루지 않아도 되어 보였는데 그들은 여러 명이 몰려가 그 유족을 찾아 자신들의 추억이라는 명분하에 떠난 사람과 관련된 여러 질문들을 하였다. 유족의 마음도 이제는 많이 치유되었을 세월이 흘렀는데 그들은 유족들의 아픈 기억을 그렇게 들추어내고 있었다.

 

앞서간 자식을 부모는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부모가 눈을 감을 때까지 잊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그게 어머니라면 더욱 그러하다. 누군가 방송에 이의를 제기하면 제작진에서는 방송제작 전에 해당되는 분들의 의사를 먼저 타진하였고 승낙을 받았다는 대답을 하겠지만 프로그램을 보면서 현안과 연결된 사안도 아닌데 굳이 가슴에 묻은 분들의 그 오래된 아픔을 지금 밖으로 끄집어내기 위하여 찾아다녀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픔은 나누면 덜하다고 하지만 시청자들이 그 오래된 아픔을 나누는데 얼마나 공감을 하는지 궁금하다.

 

학문적으로 정의되지는 않겠지만 추상적으로라도 기억과 추억의 의미가 다르다면 내가 추억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그와 연관된 다른 이들에게도 추억이 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 다른 이들이 자식을 앞세운 부모들이라면 내 추억이 그 분들에게는 그저 뼈저리게 아픈 기억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자식을 가슴에 묻고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세월을 약으로 받아드릴 수 없는 분들을 찾아다니며 그나마 치유된 만큼의 세월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려 하는 것은 아무리 시정자의 욕구를 위한다고 빙자한 방송이라 하여도 약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상처에 상처를 더하는 것이라 생각하였으면 좋겠다.

 

2021년 3월 8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KzEFQW9CXGc
Concierto de Aranjuez - Joaquín Rodrigo II. Adagio / Pablo Sáinz-Villegas - LIVE

'이야기 흐름속으로 > 내가 쓰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빨주노초파남보  (0) 2021.03.23
햇볕 쌓이는 공원에서  (0) 2021.03.15
봄소리가 반갑다  (0) 2021.03.01
그리움 무겁다네  (0) 2021.02.18
마담 캉이나 강마담이나  (0) 2021.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