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606

믿음은 곧 종교다

믿음은 곧 종교다 젊은 날의 직장시절, 내가 맡은 일과 연관성 때문에 며칠 동안 같은 사무실에서 지낸 미국인 둘이 있었다. 부자지간으로 아들은 당시 나와 비슷한 나이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 아버지는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을 많이 알려주려고 노력하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토막영어밖에 할 줄 모르던 나에게 실증이 날 법도 했겠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대로 열심히 가르쳐 주었다. 일이 끝나면 여러 가지 한국의 음식과 풍습에 관하여 질문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끄집어내면 당시 내 또래의 친구들은 아마“라테?”할 지도 모르겠지만 요새 젊은 친구들의 우스개 영어“Latte is horse"를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그들이 머물던 호텔도 내가 근무하던 사..

배움이 좋을시고

배움이 좋을시고 문득 컴퓨터가 놓인 책상 옆에 붙어있는 작은 책장을 바라보았다. 거기 제일 하단에 책장에서 가장 오래된 책이 한 권 있다. 초록색 플라스틱 표지를 한 책, “성문기초영문법”이다. 새해가 들면서 적어도 한 달에 책장에 있는 책 한 권은 다시 꺼내 읽어야겠다고 목표는 세웠지만 다시 읽는 계획 속에 이 책은 들어있지 않았다. 그건 공부라는 개념이 들어있어 매우 부담이 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나와 가까운 시절에 영어를 배운 사람이면 누구나 필수적으로 읽고 또 읽은 명서이기는 하였지만 지금 세대에도 전해지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요새 와서 자꾸 눈에 밟힌다. 지금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학교에서 정식으로 영어를 배운다. 물론 그 이전에 거의 모든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영어 학원에 보내는 것 같다..

허세가 아니려나?

허세가 아니려나? 또 다른 새해가 돌아왔다. 십이지((十二支)가 원래 음력에 기반을 둔 것이니 설날이 와야 진정한 임인년(壬寅年)이 왔다고 할 수 있겠다. 코로나 때문에 요 몇 해는 건강하라는 인사가 대수였지만 보편적으로 해가 바뀌면 우리의 인사는 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런데 한 달 전 신정에도 그런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번 설에 또 같은 인사가 오고가니 한 달 새에 두 번의 복을 받는 건 좋지만 정초에 해당되는 인사를 두 번 나누니 벌써 2년이 지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두 살을 더 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음력은 달(月)에 기초하고 있으니 해를 기초하는 양력인사는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라 하고 음력 인사는 새달에 복 많이 받으시라고 하면 인사가 아닐까?..

달콤한 설 선물

달콤한 설 선물 딩동 선물이 도착했다는 전화기 알림톡 열어보니 설선물이라는 문자와 더불어 선배가 보낸 예쁜 딸기케이크 사진 전화기 손에 쥔 이래 어디서도 받은 적 없는 갑작스런 달콤한 선물에 고마움과 당황함이 교차했다. 우선 감사의 회신문자 넣고 저녁에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집을 나서 카페 앞을 지나는데 갑자기 내 생각이 나고 오래전 소주잔 기울이며 함께 나누던 손주들 이야기가 떠올라 돌아오는 설에 손주들과 달콤하게 지내라고 보내주셨다고 했다. 선배의 손주들도 맛있게 먹은 케이크니 내 손주들도 좋아할 거라며. 이런 감사할 데가 누군가 집을 나서다 카페 앞을 지나며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되었다는 게 이리 감동적일 수가 없다. 그리고 내 손주들까지 생각하며 달콤한 할아비 만들어주었다는 게 또 그리 고마울 ..

술시(戌時)에

술시(戌時)에 어두움 깔리는 술시의 거리에 하나 둘 밝혀지는 홀로 가로등 길목에 자리한 막걸리집 간판도 술때를 알리는 네온을 밝혔구나 뿌옇게 김 서린 막걸리집 유리창 오가는 술잔 실루엣되어 어리는데 잔 나눌 친구 지금 곁에 없으니 허한 마음엔 냉기만 감싸 도네 내 마음 어찌 알고 기름내 풍겼을까 마누라가 내미는 김치전 한 접시에 친구가 들려준 와인 한 병 보일레라 그 덕에 오늘 술시 포도빛 되었도다 2022년 1월 12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ZQ3Yag9w-5Q 링크 천년바위 대금

올해의 소원은?

올해의 소원은? 새해가 밝은 날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작년 말에 온라인으로 주문하였던 새로 나온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의 회고록이다. 책을 받고 보니 다른 책의 두 배 이상 두툼하였다. 작년에 지키지 못한 최소 한 달에 한 권 책읽기를 올해는 꼭 지키겠다고 다짐하며 이 책을 선택하여 1월1일에 겉장을 넘기기는 하였지만 처음부터 무리한 선택을 하였는지 우선 책 두께에 주눅이 들었다. 그래도 매일 조금씩, 지금까지 절반은 읽었으니 이 달에 이 책 한 권은 끝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연말이 되면 새해를 위한 많은 계획들을 세우고 결심도 하지만 그 해의 연말이 돌아와 그 계획들을 다 실천하였다는,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모두들 우스갯소리로 ..

산타할머니는?

산타할머니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초등학교 2학년인 외손자 녀석 왈 “나는 오늘 8시 30분에 잘꺼야” 하니까 그 옆에 있던 고학년 손녀들도 덩달아 자기들도 일찍 잘 거라고 하였다. 각자 자기집에 예전에 사 놓았던 조그마한 조립식 크리스마스트리를 매해 12월에는 꺼내놓으니 자동적으로 그 아래 놓이는 선물을 기대하고 일찍 자겠다는 거였다. 상대적으로 어린 외손자는 아직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고 있는 눈치지만 고학년인 손녀들은 이제는 크리스마스트리에 대한 관심조차도 시들어든 듯하였다. 그러니 초등학교 내내 의무적으로 받아온 선물에만 관심이 있지 산타클로스의 존재에 대한 것은 더욱 관심도 없어 보였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손주들에게서 카톡이 왔다. 각자 받은 선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외손자 녀석은 무슨 비밀..

함박눈 내리면

함박눈 내리면 마른 잎 가득한 겨울 평원에 함박눈 내리면 시간이 멈춘 듯하다. 들판의 짐승도 하늘의 새도 속세의 인간도 짐짓 발자욱 남기기 망설여 설원엔 시간의 흔적이 없다. 너울 밀려오는 바닷가에 함박눈 내리면 세상의 모든 소리가 눈 속에 묻힌 듯하다. 파도 부딪는 바위의 울림도 포말 속 모래의 부딪침도 먹이를 찾는 갈매기 울음도 소리 없이 쌓이는 눈에 모두 덮여진 듯 바람조차도 숨을 죽인다. 세상이 잠든 눈밭에 달빛 내리면 달빛은 눈 위에 녹아들고 눈밭은 푸르스름 달빛으로 변한다. 달빛 스민 눈엔 번뇌마저 녹아들 듯하다. 도시엔 눈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시의 눈엔 세상의 온갖 잡티가 다 섞여 내리는 것 같다. 도시의 발에 마구 밟히고 소금에 절여지며 천덕꾸러기로 버려진다. 그래도 눈이 오면 도시..

총을 맞을 수 있다

총을 맞을 수 있다 좀 오래되었다는 표현을 해야 할 정도의 세월이 흘렀다. 미국 출장을 가면 출장지의 대중교통이 우리처럼 편리하지 못했던 관계로 목적지를 갈 때 마다 택시를 타던가 아니면 차를 빌려서 다녀야 했다. 그러나 짧은 기일 내에 여기저기 다녀야 할 장소는 많은데 계속 택시를 타면 주머니 속이 곧 보이기 시작하니 되도록 차를 빌려 지도를 봐 가면서 열심히 운전하고 다녔다. 지금에야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가면 되지만 당시에는 지도를 보며 목적지를 찾아가야 했기 때문에 운전에 부담이 많이 되었다. 더군다나 남의 나라에 잠깐 다니러가서 익숙하지 않은 도로와 표지판을 마주해야 하니 어려운 점이 많아 늘 긴장하고 다녔다. 다행이 그렇게 다니면서도 교통경찰을 마주할 일은 없었으나 우리처럼 교통경찰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