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606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김장을 한다 하니 가족이 모두 모였다. 예전과는 달리 포기수도 얼마 되지 않고 그나마 절인배추를 택배로 받아 속만 넣으니 내가 집사람을 좀 도와주면 더하여 다른 식구들의 도움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식들과 손주들이 다 모였다. 손주들은 속 넣은 게 재미있다고 (실은 금방 실증이 나 다른 놀이를 찾지만) 할머니 옆에 붙어 앉았고 며느리와 딸은 주도적으로 일을 하였으니 내가 뭐 딱히 도와야 할 일은 없었다. 아들과 사위는 으레 김장날이면 주어지는 돼지고기 수육과 냉장고에 넣어둔 소주병에 더 관심이 있었다. 모두 모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던 중 며늘아이가 “좀 있다가 교복 맞추러가요.”라고 말을 꺼냈다. 난 생각지도 않고 무심하게 누가 무슨 교복을 맞추냐고 물었다. “아버..

월드컵

월드컵 우리가 사는 지구촌에는 나라나 민족 단위의 독특한 스포츠가 있음은 물론 전 세계인이 공통적으로 즐기는 많은 종류의 스포츠가 존재한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는 스포츠라는 용어 대신에 운동(運動)이라는 한자어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중국이나 일본 등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국가에서도 같은 한자를 쓰고 있다. 그러나 요새는, 물론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그럴 테지만, 특히 젊은 층에서나 매스컴에서는 운동 보다는 스포츠라는 용어를 즐겨 쓴다. 아마도 전문 스포츠와 일반인들이 건강을 위하여 행하는 운동과 구분을 하기 위함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운동을 하는 곳은 운동장이고 스포츠를 하는 곳은 그라운드가 된다. 지구촌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즐기는 스포츠라고 하여도 나라에 따라서는 즐길 수 없는 것들도 많다. 선수들을 ..

철부지

철부지 어느덧 11월도 며칠 남지 않았고 이제 12월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그저 이야기 하던 버릇대로 ‘세월은....’을 읊을 것이다. 매해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보다는 같은 세월을 놓고 뭔가 다른 말이 없을까 생각해 보지만 뭐 신통한 건 떠오르지 않는다. ‘구관이 명관’이라 하듯 이것도 ‘구작이 명작’인 모양이다. 아무튼 달력은 어느새 마지막 장을 보인다. 동네 금융기관이나 안경점에서 새 달력을 받아 가라는 문자가 왔다. 그러나 선뜻 받으로 가는 게 내키지 않는다. 스마트폰에서 제공하는 달력을 인식해서가 아니라 세월 가는 게 반갑지 않은 나이가 되었기 때문 일게다. 사람들은 아직 “지금은 늦가을이지”라고 말하지만 계절은 이미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立冬)을 지났다. 그런데 길거리엔 아직 반팔 옷차림을 ..

운전면허 갱신

운전면허 갱신 동네 모임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분께서 아주 기쁜 얼굴로 “생각지도 않고 있었는데 괜한 수고를 덜었다”고 하였다. 무슨 일이냐고 물은즉 운전면허 갱신을 하러 갔는데 만75에서 하루가 모자라 75세부터 주어지는 특별교육을 면제 받았다는 것이었다. 고령자에게 실시하는 교육이라 하였다. 그러고 보니 나도 운전면허를 갱신하라는 문자와 우편물을 받았는데 올해 안에만 갱신하면 되기 때문에 미적미적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 제도가 있었나? 나야 이직 그 나이에는 이르지 않았으니 교육은 없을 것이므로 좀 더 있다가 신청을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관계기관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11월, 12월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므로 10월중으로 갱신하라는 독촉 문자였다. 운전면허증을 들여다보니 지난 번 갱신한 때가 10년 ..

초가을 하늘은 청명한데

초가을 하늘은 청명한데 컴퓨터가 놓인 자리에서 의자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면 하늘이 보인다. 가을하늘이다. 여름과는 확연히 다른 하늘빛에 하얀 뭉게구름이 여기저기 걸쳐있다. 바람이라도 불면 구름 흘러가는 게 꼭 바다 위를 내가 배를 타고 지나는 듯 느껴진다. 가을 하늘에 최면이라도 걸린 듯 내가 구름과 반대방향으로 흘러가는 듯 착각되기 때문이다. 9월의 그 청명한 초가을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흰 구름 사이사이로 검은 구름이 자리한 듯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 짐을 느낀다. 9월에 들어서며 일어난 이웃들의 청명하지 못한 모습 때문이다. 어떤 여론조사기관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니 노인이라 불리는 나이가 어느 정도여야 적절하냐는 질문에 대한 평균이 74세였다고 한다. 이 숫자를 기준으로 한다면 나와 집사람은 아직 노..

가을아침 강가에서

가을아침 강가에서 바람 분다 가을초입 강가에 아침 바람 분다. 바람 머문 수면엔 잔파 살랑이고 물가 따라 늘어선 코스모스 꽃송이도 바람 오가는 대로 이리 기웃 저리 갸웃 고개를 젓는다. 억새인가 갈대인가 서로 뒤섞인 채 긴 허리 바람에 꺾일라 이리 뒤척 저리 흔들 서로 비비고 기대며 아침 가을을 맞는다. 햇살에 비친 몸은 세월을 홀로 맞은 듯 가을빛으로 변하고 있음을 알고는 있는지. 강가에 가을 머물면 강물은 흐름은 그대로인데 물가엔 천천히 바뀌는 게 있다. 하늘빛, 물빛, 풀잎빛 그 변화 따라 내 걸음도 느려진다. 아침 강가에서 바람 맞으며 가을을 느낀다. 2022년 9월 20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tx6q_4KGxs 링크 가을바람 / an..

비 오던 날 닭 한 마리 때문에

비 오던 날 닭 한 마리 때문에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저녁 무렵 집 앞 어린이 놀이터 부근에 비를 흠뻑 맞고 배회하는 닭 한 마리가 있었다. 비 맞은 닭을 본 것도 처음이지만 도무지 도시의 동네 한 복판에 갑자기 나타난 닭이 어디서 왔는지 무척 궁금하였다. 닭은 배가 고팠는지 연신 아스팔트위에서 무언가를 찾고 부리로 쪼아대고 있었다. 측은한 생각에 길 위에 쌀을 조금 뿌려줘 보았다. 그런데 이 닭은 쌀알은 거들떠보지를 않았다. 쌀알도 안 먹는 닭이 있다니 ‘배가 덜 코픈 모양이다’라고 생각하였다. 보슬비는 계속 내리고 길거리와 공터를 계속 헤매는 닭은 점점 초라해져갔다. 이 모습을 같이 바라보던 동생이 닭의 사진을 찍더니만 길 잃은 닭 같으니 비가 그칠 때 까지만 집안에 들여놓자고 하였다. 사람의 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