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606

가을 초입에

가을 초입에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새로운 해, 2022년이 시작된다고 각 방송사마다 추위를 잊은 채 카메라와 마이크를 길거리로 가지고 나와 국민들에게 희망을 묻던 순간이 언제 있었느냐하고 계절은 어느새 여름을 넘어 가을의 담장 안으로 한 발을 들여놓았다. 가을에 들어선다는 입추(立秋)는 8월 초순에 지나갔지만 사실 그 절기는 여름의 한복판에 있었다. 한자표현대로라면 가을로 들어서는 게 아니라 이미 들어섰다라고 해석해야 옳을 것 같다. 입추에서 입동(立冬) 전까지를 가을이라 한다고 하는데 근자에는 10월에도 반팔을 입고 다닐 정도로 기온이 높을 때도 있으니 계절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고쳐져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8월 중순에서 하순으로 오면서 비가 많이 내렸다. 기상청에서 장마가 끝..

보자기

보자기 추석이 가까워지고 있다. 이번 추석은 여름이 물러가기도 전인 9월 초에 버티고 있어 더운 추석이 될 것 같다. 추석이 되면 다양한 선물 보따리들의 오고감이 많아진다. 선물을 이야기할 때면 늘 그에 따르는 과대포장이 도마 위에 오른다. 도마라는 것은 주방에서 뭔가를 칼로 자를 때 받쳐 쓰는 주요 주방기구 중에 하나이다. 주방의 도마 위에 오른 모든 것은 반드시 잘려지거나 다져진다. 그런데 이 선물포장이라는 것은 매년 ‘도마 위에 오른다’고 하면서도 잘려지거나 깎여지지 않는다. 선물세트라는 것의 포장은 매년 모양도 거기서 거기다. 아마 내용물보다는 겉모양을 중요시하는 허울주의가 빚어내는 현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요새 포장은 보기도 좋고 강하고 들고 다니기 편리하고 용도에 따라 크기와 모양도 다앙한 쇼..

좀 오래 머물러 있어라

좀 오래 머물러 있어라 열어 놓은 아침 창문으로 훅 하고 뭉쳐진 바람이 몰려들어오며 선풍기 바람과 마주쳤다. 순간 흡사 무협영화의 장풍이 부딪는 펵 소리가 났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회색구름 짙게 드리웠던 하늘 옆구리가 검은빛으로 바뀌었다. 이런 모습엔 창문밖에 얹어놓은 비가림막에서 곧 후드득하고 크고 굵은 소리가 들려야하는데 이상하게 바람만 툭툭 들어온다. 에어컨은 손주라는 비밀번호가 있어 나는 작동을 못한다. 마누라는 부채가 좋다며 손주들이 안 오면 여름 내내 쉬게 하라는 명이니 그래 나도 뭐 에어컨에 미련이 없다고 하곤 있지만 내심 이러려면 거실도 크지 않은데 저건 왜 한 자리 내어주었을까 마누라에 시비라도 걸고 싶다. 비가 오면 비를 섞은 바람이 훅 쳐들어 올 테니 그래 비는 관두고 그 시원한 바..

휴가

휴가 출근시간보다 이른 아침인데도 주차장에 보이던 차들이 많이 안 보인다. 8월이 시작되면서 이웃들이 휴가라는 이름으로 집을 떠난 모양이다. 내 자식들도 집을 비운다는 연락이 있었다. 장마가 끝났다고 했는데 내가 사는 곳은 8월이 시작되며 참 요란하게 비가 내렸다. 천둥과 번개를 그리 시끄럽게 동반한 비는 살면서 지금까지 별로 겪어보지 못하였다. 그 요란한 빗줄기에 잠에서 깨어난 집사람이 비가 안 들여 칠 정도로 조금 열어 놓았던 창문을 슬그머니 닫았다. 창틈으로 번개가 들어올 것 같아 무섭다고 했다. 나 또한 내 옆에 떨어지는 것 같은 그리 요란한 천둥 번개에 괜한 걱정이 되었다. 지금은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옥상 옥탑 기계실 위에 설치된 TV안테나에 저 번쩍이는 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 곧 그..

남자인데 왜 여자라고 해?

남자인데 왜 여자라고 해? 나라를 이끌어 간다는 군상에 속하시는 분들은 걸핏하면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고 한다. 또 국민들이 원하니 자기가 그 일을 해야 한다고도 한다. 국민이 뭘 원하는지 어찌 조사하였으며 그 조사 결과는 이야기 하지 않은 채 국민은 많이도 찾아댄다. 매번 국민이 아니라 자신의 표를 생각한다는 게 국민을 앞장세우는 것 같아 그들이 그렇게 이야기 할 때 마다 난 ‘국민을 위하는 것은 국민 스스로일 뿐이다’라고 생각한다. 가끔 TV뉴스를 보면 어떤 사고가 났을 때 지나가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사람을 구조하고 흐트러진 길거리를 정리하는 소식이 관련 영상과 함께 방송된다. 나는 거리를 지나다 그런 광경을 목격한 일이 없으니 내가 지나는 길에 그런 일이 발생을 하면 그 분들처럼 지체없이 뛰어들..

노을 무렵 등대에 기대면

노을 무렵 등대에 기대면 키 작은 하얀 등대에 기대앉아 먼 곳 수평선 바라보면 큰 다리 긴 다리 하나 해무에 가려진 실루엣 되어 바다를 가른다. 너울을 밀어 포말을 지으며 돌아오는 작은 어선은 어창 가득 만선의 기쁨을 실었음인지 저녁노을에 늘어진 그림자만큼이나 긴 뱃고동을 울린다. 외해를 바라보는 건너편 빨간 등대는 어느새 불 밝혀 어선들의 귀항을 반기고 내항을 만드는 방파제는 큰 너울 받아 개펄에 호수 만들어 밀물 따라 돌아오는 고깃배들 어미 품으로 반긴다. 노을 무렵 등대에 기대면 심신의 울타리가 녹아내린다. 2022년 7월 4일 하늘빛 음악 : https://www.youtube.com/watch?v=ZDQEr-_olIY 링크 │오빠생각│자기전 듣기좋은 동요 피아노 자장가, 편안한피아노음악, 수면음..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나이를 먹다보니 내가 직접 다녀야 할 행사나 경조사가 많이 줄어들었고 또 지난 수년간은 코로나 사태라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세상’이 이어지면서 다중이 모이는 행사가 오랫동안 통제되었으므로 정장을 차려입어야 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또 인사치례를 해야 할 행사가 있었다 하더라도 요새는 알림장에 은행 계좌번호가 당연히 적혀오니 코로나 핑계로 웬만하면 송금으로 대신했으니 옷을 차려입어야 할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좋을 듯싶다. 그리고 나 스스로 정장 입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다보니 꼭 가 야 한다면 어떤 행사냐에 따라 그저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 정도로만 입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양복 정장을 입고 넥타이까지 곁들이면 참 불편하기 짝이 없다. 꼭 넥타이를 매야 한다면 ..

배지

배지 ‘배지’라는 단어가 있다. 특정한 문장 속에 있으면 모를까 설명이 없으면 이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하기엔 별로 들어본 적이 없고 한자어라고 하여도 일반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단어는 아니니 한자를 병기한다 해도 사전을 찾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 것 같다. 문장 중에 있는 단어라면 사전이 없어도 이해가 될 수 있겠지만, 많은 단어들이 그러하듯, 단어 자체만 가지고는 사전을 찾아도 여러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경우가 있으니 콕 집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전을 찾으면 배지라는 단어에 대한 동명이의(同名異義)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설사 많다고 하여도 지금 이 글에서 그 뜻의 많고 적음을 짚어 보고자 함은 아니며 단지 우리말로 전환된 영어단어 Badg..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초등학교시절부터 모두가 인간에 대하여 공통적으로 배운 게 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때에 선생님께서 같이 가르쳐주셨을법한 ‘감정이라는 게 무엇이냐’하면 같이 기억해낼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감정 (感情) :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하여 일어나는 마음이나 느끼는 기분’이라고 간단히 나와 있다. 백과사전을 찾으면 좀 길게 나온다. 국어사전의 단순한 뜻에서 인문과 철학이 좀 더 가미되어 설명된다. 딱히 감정이라는 것에 대하여 배운 바도 없고 사전을 찾아본 바 없을지라도 무엇에 대하여 느낀 바를 말이나 표정으로 표현할 줄 알게 되면 나이의 작고 많음을 떠나 그것이 곧 감정이 아닐까? 감정이라는 것은 입안에서 느낄 수 있다는 단맛, 쓴맛, ..

단톡방에 오른 사진 한 장

단톡방에 오른 사진 한 장 5월이 끝나는 날, 아직 정오라고 일컫는 시각이 한참이나 남았는데 전화기에서 카톡이 왔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친구들이 좋은 아침소리를 주고받는 시간인지라 그러려니 하였는데 이번은 그게 아니었다. 내가 속한 동네 모임 단톡방에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모임의 간사를 통한 고지가 아니라 모임에 속한 분 본인이 직접 올린 것으로 된 사진 속에는 또 다른 사진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붓글씨체로 쓰인 검은 글씨, “故 이00...”. 그리고 알림문자 “이렇게 돌아가셨어요”. 아마 가족 중 누군가가 고인의 전화기로 단톡방에 소식을 직접 올린 모양이었다. 그는 2년여 전 모임에서 내가 처음 만났을 때 나와 마주 앉아 소주잔을 잘 기울였었다. 그러더니 한 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