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31

초록색 유리병이 그립다

초록색 유리병이 그립다 아마도 이제 자기가 나서 자란 가지에 매달일 힘조차 없는 모양이다. 얼마 전 며칠간 추적추적 반갑지 않은 가을비가 계속 내리고 바람까지 불어댄 날씨에 가로수 가지마다 남아있는 잎사귀들이 절반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날이 차가워지기는 하였지만 미풍조차 불지 않는 오늘에도 동네 은행나무 대부분은 몸을 털어내는 소리마저 들릴 듯 여기서 툭 저기서 툭 노란 이파리들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아직 힘겹게 빛바랜 초록빛을 간직한 나무가 있는가하면 노란색이 온 몸을 감싸기는 하였지만 비와 바람을 굳건히 버티며 온전한 몸을 간직하고 있는 나무도 있다. 자신은 아직 땅으로 내리거나 바람에 실려 가야 할 정도로 가을을 타지는 않는다는 뜻인지. 사람들 대부분이 계절이나 날씨에 민감하기는 하..

가을엔

가을엔 가을엔 떨어져 쌓이는 낙엽만큼이나 그리움도 쌓입니다. 무엇이 그리 그리우냐고 물으면 딱히 대답할 그리움도 없는데 가슴 한켠이 살아진 것 같은 허전함에 깊은 숨을 들이쉽니다. 가을엔 높아진 하늘만큼이나 보고픔도 높아집니다. 무엇이 그리 보고프냐고 물으면 딱히 눈에 아른거리는 것도 없는데 뿌연 연무 같은 게 앞을 가로막는 것 같아 눈꺼풀을 자꾸 비비게 됩니다. 그래서 가을엔 밤껍질색 보다도 무겁게 볶인 커피 원두를 갑니다. 그리고 입가를 감싸고 돌아나가는 진한 아라비카 원두의 내음에 섞어 그리움 보고픔 모두 흩더리고는 모닥불에 태워지는 단풍잎의 잿빛 연기 속 가을 냄새보다도 더 진한 커피향에 취하며 흑갈색 에스프레소를 마십니다. 2021년 11월 7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

세월에 흔들리며

세월에 흔들리며 먼 발취에서 멍하니 산허리 바라보다 억새밭 일렁이면 가을이 오는구나 그리 생각합니다. 산중턱 오르다 억새풀 사이 바람 스치는 소리 들리거든 가을이 문턱에 왔구나 그리 느껴도 좋겠소. 습지 고랑 수면에 일렁일렁 물주름 지면 가을이 오나보다 그리 생각합니다. 갯골가녘 갈대 끝에 삐죽 내민 마른 꽃 보이면 가을이 문턱을 넘었구나 그리 느껴도 좋겠소. 산등성에 개울가에 고개 숙인 채 여기 기웃 저기 기웃 바람 따라 흔들리고 물결 따라 오가는 마른 이파리 보이거든 그러면 가을이 익었구나 그리 생각하시구려. 오는 가을에 세월 빠르다 투정마시고 그냥 세월에 흔들리며 사시오. 그래도 깊은 가을 만산홍엽은 볼만하다오. 2021년 9월 5일 하늘빛 음악: 유튜브 https://www.youtube.com/..

동녘하늘 가을소식

동녘하늘 가을소식 한낮 여름 더위는 여태 중천에 머물러 있는데 동녘 아침 하늘가에는 가을 온다는 소식이 뭉게구름 되어 갖 따놓은 목화송이 모습으로 층층이 쌓이고 있다. 가물대는 아지랑이 연무를 뿌려 하늘은 여름내내 하늘색이 아니었거늘 아침 뭉게구름에 밀려 아지랑이 걷혀진 동녘엔 구름과 구름에 티없는 크레파스 하늘색이 다리를 놓았다. 아직 머리위 햇볕 뜨거운데 짝을 다 찾았음인지 아침하늘 가을소식 동녘에 이르자 그 시끄럽던 매미소리 내 창밖을 벗어났다. 2021년 8월 15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uSP-pCLn-_c 링크 Francisco Tarrega - Capricho Arabe / Han Eun 한은